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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광숙 前도봉소방서 구조대장
“한시가 급한데 동아일보 마크를 단 차량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작정 도로로 나가 차를 세웠죠.”
경광숙 전 소방관(63·현 CJ 그룹안전감독관)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사거리에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날을 돌이켰다. 당시 도봉소방서 구조대장이었던 그는 서울소방본부 회의 참석 후 교보문고에서 자료를 찾다가 사고 소식을 접했다.
경 전 소방관은 “당장 출동하라는 말에 지하도를 달려 올라갔다. 택시가 안 잡혀 발을 구르던 차에 동아일보 취재차량이 보였다. 신분증을 보이며 사정을 설명하자 취재기자는 두 말 없이 타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차는 한 번도 안 멈추고 7, 8분 만에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긴박하게 본사와 통화하던 기자와는 인사도 못 나눈 채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사고 후 한 시간이 채 안 된 현장은 먼지가 자욱했다. 그는 양복 위에 간단한 장비만 걸치고 구조에 나섰다.
당시 수십 명을 구했지만 지금도 못 잊는 장면이 있다. 나흘째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잔해를 해치며 가던 중이었다. 정확한 방향을 찾느라 피가 마르던 그의 귀에 “더 이상 못살 것 같아요”라는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가족들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으라 하고 작업에 속도를 냈는데 한두 시간 후 다시 말을 걸어 보니 답이 없더라고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후엔 구조 대신 시신 발굴이 주 업무가 됐다. 그러다 참사 11일 만에 최명석 씨를 구하며 그와 대원들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시대의 흐름을 알려면 사설을 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집에서 보던 동아일보를 열심히 봤다”고 했다. 해병대 제대 후 34년 7개월 동안 소방관의 길을 걸었다.
7층 난간에서 추락해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위기를 겪으며 인명구조 매뉴얼을 만들었고 교관으로 후배를 길러냈다. 특수구조대에서 일할 때는 조난 등산객을 구하느라 하루에 7번 산을 올랐다. 그는 “등산을 좋아했는데 당시 무리를 해서 무릎이 안 좋아졌다”며 웃었다.
재해 현장을 생생하게 담으려는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인 적도 적지 않다. 그는 “공공 부문은 사실을 감추려는 속성이 있어 언론의 감시가 꼭 필요하다. 다만 현장 안전라인은 지켜 달라”고 강조했다.
성수대교 붕괴 등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지만 삼풍 참사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기자와 함께 양재 시민의 숲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삼풍 위령비 앞에서 “색소폰을 배워 위령비 앞에서 가끔 불어드린다. 그러면 마음속 답답함도 달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4년 민간 부문으로 옮긴 후에도 신문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하며 국민 안전의식을 높이려 노력했다. 지난해 말엔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후 현장이 바뀌었는지 직접 확인하러 헝가리도 다녀왔다. 그 경험을 올해 초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그는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 안전은 스스로 챙긴다는 국민의식 개선과 노후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는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에 바라는 점을 묻자 “저는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 동아일보는 우리 사회의 방향 제시를 제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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