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이래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 때문에 가뜩이나 직장 회식도 줄어든 요즘, 가정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지낼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할까?
대구에서 유튜브에 올릴 생각으로 감염병 환자 흉내를 내고 이걸 촬영했던 한 남자가 말했다. “‘더 관심을 얻을 수 있겠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죠. 아무것도 아닌 제가….” 요컨대 자신을 알리고 유명해지고 싶어서였다는 거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대학원에 갔을 때 사이비 종교에 빠진 한 대학원생을 만난 적이 있다. 지적이고 사려 깊고 유순한 청년이었다. 그 친구가 왜 합숙을 해가며 전도에 열성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그가 한 말이 가슴에 남았다.
“지방에서 올라왔고 친구를 사귈 틈도 없이 군대에 갔다 왔어요. 내게 말 붙여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말을 걸면 다들 피하는 듯했죠.”
그가 하지 않은, 아마 하지 못한 말은 이랬으리라 생각한다. “같이 합숙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친구들은 나와 밥도 먹고 얼굴도 마주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까요.”
20대의 나도 사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어느 날 종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붙잡혀 조상님께 드린다는 제사 비용을 내고 절을 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혼자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중국은 정말 후진적이라고, 의료며 위생 같은 사회 제반 여건이 그리 낙후돼 있으니 감염이 확산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는 선진적인 의료 시스템에 시민의식이 있으니 잘 이겨낼 거라고들 말했다. 하지만 신천지 이하 각종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우리도 중국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이고 깍듯한 겉모습 이면에 언제부터인지 당연하다는 듯 똬리를 틀고 앉았던 ‘너와 나의 거리’가 마음에 박혔다. 뼈마저 얼리는 냉기와도 같은 고독, 위로의 손길조차 거부하기에 이른 자폐적 고립, 나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공허….
나는 오래전에 만난 그 청년에게 결국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 시절에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 꼭 해야만 했던 건 큰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하면 됐을 텐데. 하지만 나는 바빴다. 시험을 치러야 했고 논문도 써야 했다. 청년이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귀한’ 시간만큼은 결코 내줄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 자작극을 연출하고는 폐가 찢어질 것 같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죽어가고 있다며 절규했던 그 유튜버가 떠오른다. 악의적인 행동이었지만 그 청년 역시 어쩌면 부르짖고 있지 않았을까. “저 외로워요! 친해지고 싶어요!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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