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무례하다” 뺨 때리고 발로 차고…말로만 “문화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0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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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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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문화정치를 내세우며 과거 무단정치의 상징인 헌병의 상당수를 경관으로 옷을 갈아입혔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에 경찰서와 파출소, 주재소를 크게 늘려 조선 민중을 감시하고, 수탈했습니다. 민족차별, 민족말살의 일선에 경찰을 앞세운 것이죠. 동아일보는 창간 직후부터 경찰의 횡포를 끊임없이 고발했습니다. 그것이 곧 총독부를 공격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먼저 1920년 6월 5~7일자 3면에 연속 게재한 ‘제도의 죄냐? 사람의 죄냐? 지방경관의 횡포’를 보겠습니다. 해당 지면을 찍기 보름 전, 황해도 봉산군 기천면에서 일본인 순사부장이 조선인 면장을 구타하며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는데 동아일보는 이 소식을 듣고 순회특파원을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곡절은 이랬습니다. 사이토 총독의 ‘1군 1경찰서, 1면 1주재소’ 방침에 따라 기천면에도 주재소를 지으려던 순사부장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면장을 찾아가 직접 마을 유지 21명을 지명하며 이들의 기부를 받아야겠으니 모아달라고 합니다. 면장의 기별에도 끝내 3명이 불참합니다. 그러자 화가 난 순사부장은 21명 모두 주재소로 출두하라고 압박했고, 면장이 “농번기라 오늘 오지 않은 3명만 호출하면 어떻겠느냐”며 완곡히 거부하자 갑자기 “무례하다”며 뺨을 때리고, 구둣발로 가슴과 배를 찬 겁니다.

기자는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취재해 보도하며 말미에 “독립당과 배일파를 감옥에 넣기 전에 먼저 경관과 하급관리를 처치하라. 종래의 ‘비리겐’식 정치와 현재의 ‘깨강정 제도’로는 성공적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 없으니 꿈 깨라”고 총독을 향해 일갈했습니다. ‘비리겐’은 머리가 뾰족하고 눈썹 끝이 올라간 복신(福神)의 상(像)입니다. 미국의 ‘빌리켄(Billiken)’이 원조인데 일본에서 들여오면서 ‘비리겐’으로 발음한 것이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은 생김새가 이와 비슷해 ‘비리겐’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또 깨강정은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부서지기 쉬운 과자이니 기사에서 ‘종래의 비리겐과 현재의 깨강정’은 ‘데라우치 식 무단정치와 형편없이 왜곡된 문화정치’를 싸잡아 일컫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1920년 4월 19일자 3면은 부산역 앞에서 조선인 수백 명에게 일을 시킨 뒤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은 데다,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총까지 쏜 일본인을 비호하고 노동자들은 구타, 구금한 경관을 폭로했습니다. 또 같은 해 5월 12일자 3면 ‘난폭한 경관의 행위’에서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장인, 영풍부원군 홍봉한의 사당을 모신 집에 청결검사를 하러 온 순사가 사당방을 훼손한 일을 고발했습니다. 순사는 가장 경건해야 할 장소인 사당에 대고 빗자루를 휘두르며 “이게 다 뭐야? 부원군은 뭐냐?”라며 모욕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주부가 파출소에 고발했지만 흐지부지 종결되고, 다음날 다시 종로경찰서에 고소하니 증거도 없는 무고(誣告)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구류했다는 내용입니다.

동아일보 1932년 2월 14일자에 실린 ‘순사와 개’의 악보. 해외동요에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동아일보 1932년 2월 14일자에 실린 ‘순사와 개’의 악보. 해외동요에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후로도 일경(日警)의 만행을 줄기차게 비판했지만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1932년 2월 14일자 4면에 실린 ‘순사와 개’라는 동요입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몇 번 읊다보면 개가 짖는 대상이 순사인지, 도둑인지 헷갈릴 정도로 고급스런 은유가 쓰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사를 본 순사들의 얼굴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멍 멍 멍 개가 짖네/ 순사 오는 걸 보고~/ “이 댁엔 도둑놈이/ 안 들어왔으니~/ 딴 데나 가보라”고/ 멍~ 멍 멍~ 멍 멍~’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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