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람과 싸우며 목숨 건 75일 항해 “도전하라, 청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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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평양 요트 횡단 이재웅씨

34년의 간격을 두고 배로 태평양을 건넌 이재웅 씨(왼쪽)와 최준호 씨가 19일 서울 신문박물관에 전시된 파랑새호 사진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34년의 간격을 두고 배로 태평양을 건넌 이재웅 씨(왼쪽)와 최준호 씨가 19일 서울 신문박물관에 전시된 파랑새호 사진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마치 산 같더라고요.”

“거기에 바람까지 불면 정말 무섭지.”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19일 만난 이재웅 씨(68)와 최준호 씨(40)는 서로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이 씨는 중고교 동창 노영문 씨(68)와 함께 1980년 국산 요트 1호인 ‘파랑새호’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요트 횡단에 성공했다.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사업이었다.

태평양 요트 횡단은 한국 해양인의 오랜 꿈이었다. 동아일보가 후원한 동아갈매기호가 1977년, 78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 시절부터 합판으로 요트를 만들며 함께 꿈을 키운 이 씨와 노 씨는 국산 요트 1호로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 미국 바이어에게 ‘무료로 배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항해 비용은 사재를 털고 부모님께 빌려 마련했다.

이 씨는 “살아 돌아올 확률이 절반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33피트(약 10m)의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시작한 모험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돛 일부가 파손되는 바람에 항해는 예정보다 20일가량 길어졌다. 보름 만에 무선장비가 고장 나 고국에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이 씨는 “돈이 없어 육상용 무선장비를 샀는데 방수 기능이 부족했다”며 웃었다.

두 청년은 바람과 파도, 향수병과 싸우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끝에 75일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이 씨와 노 씨는 국민적 영웅이 됐고 1980년 본보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영광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운동 등 현안에서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둘을 활용했다. 이 씨는 “당시 만나는 분들이 광주 얘기를 하며 ‘그래도 자네들 덕분에 위안이 됐다’고 할 때마다 정권이 괘씸했다. 대통령 취임 축하 행사에 초청받고도 안 갔다”고 돌이켰다. 노 씨는 “(영광을) 도둑맞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험은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사업 부진과 지인의 연이은 죽음으로 고민에 빠졌던 최 씨는 2014년 초 ‘내가 태어난 날(1980년 8월 7일)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며 옛날 신문을 뒤지다가 파랑새호 도착 소식(8월 6일)을 접했다. 최 씨는 “마치 감전된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씨는 노를 저어 대양을 건너는 ‘오션 로잉’에 도전한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를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하는 ‘1회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에 참가했다. 외국인 3명과 함께 43일 동안 노를 저어 13팀 중 1위로 완주했다. 귀국 후 스타트업을 시작한 최 씨는 “힘들어도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귀국 후 인터뷰에서 파랑새호 영웅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최 씨는 이날 소원을 이뤘다. 상기된 표정으로 대화하던 최 씨는 “한국에 이런 대단한 분이 있다는 걸 잘 모른다. 모험가를 더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청년들의 도전 없이 한국은 생존할 수 없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둘은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청년의 모험과 도전을 소개하고 격려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 체류 중인 노 씨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당시 도전을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며 “후배들이 새로운 해양 도전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동아일보#파랑새호#태평양 요트 횡단#이재웅 씨#최준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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