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음식여행이 아닌 한국의 향토음식을 찾아 떠나는 음식문화 탐사 프로그램을 장기간 운영한 적이 있다. 한번은 주제가 ‘컬러 푸드’였다. 머리에서 먼저 빨강 노랑 등 현란한 색채의 파프리카가 떠올랐다. 동시에 향토음식에 과연 컬러 푸드랄 게 있을까라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그래서 찾아 떠난 음식이 오랜 역사의 종갓집 간장이었다. 햇간장 청장부터 5년 된 진장 그리고 10년 넘은 수장까지 오래된 순서로 간장을 담아 줄을 세워보니 이름은 물론이고 맛과 본연의 컬러가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그날은 익숙했던 일상의 재발견이자 가장 인상 깊은 컬러 푸드 비교 경험기로 지금까지도 기억된다.
누구나 아는 식재료를 세심히 연구하고 그 컬러와 생리를 재발견해 꾸준히 요리해온 김기호 셰프를 만났다. ‘늦깎이 셰프’라는 그는 젊은 후배들처럼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기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료를 찾고 만들어보는 ‘실험 주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쑥도 어린 쑥과 다 자란 쑥의 맛과 색상이 다르듯 식재료의 성장에 따른 맛과 특징이 다르다. 그는 이 체험을 요리에 적용하기 위해 7년 전부터 경기 고양시에 마련한 자신의 텃밭에서 나는 채소로 식당 밥상을 차리고 있다.
얼마 전 맛본 식당 ‘초록바구니’ 식사에서는 현미 칩(chip) 위에 비트청을 살짝 바르고 싱싱한 딸기를 올린 애피타이저, 싱싱한 쑥갓 샐러드에 올린 부드러운 전복구이와 찐찹쌀튀밥, 통감자로 만든 수프에 오른 한우안심구이,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은은히 감도는 아이스크림 등이 이어졌다. 김 셰프의 음식은 무척 밝다. 음식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도 돌아온 계절을 알 수 있다. 눈에 튀는 현란한 컬러는 아니지만 식재료 본연의 색을 알게 해준다.
‘초록바구니’ 주방을 기웃거리다가 ‘Natural, Environment(friendly), Waste zero, Sustainable’이라고 쓴 칠판을 봤다. 직원들과 공유하는 그의 생각을 담은 말들이었다. 자연이 좋아서 스스로 원하는 재료를 위해 농사짓고, 이를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애정으로 쓰레기가 덜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바구니’ 가득 담아 김 셰프 나름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닐까.
요즘 음식은 한식인지 양식인지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장난치듯 섞어놓은 응용음식에 싫증날 때도 있다. 초록바구니의 요리는 새로운 시도지만 깊이가 있고 화사하되 수선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다음 날 속이 편한 음식이니 종갓집 간장처럼 오래 지속되고 시간과 함께 깊이를 더해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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