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종종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성격상 책장 모서리를 접지는 못하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 놓곤 한다. 이마저도 그 용도를 다하면 곧장 뜯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어느샌가 책갈피로 쓸 만한 것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엽서나 티켓, 사진, 심지어는 카페 쿠폰까지 썼다.
어느 날 북다트(book darts)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 서점이나 출판사의 굿즈에 솔깃하긴 했지만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손톱만 한 북다트란 것은 책에 손상을 주지 않는 기능성에다 황동 빛 때깔, 해외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서 쓰인 역사까지 나를 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북다트를 주문하고 결제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배송을 기다리며 한층 더 나아진 독서생활을 고대했다.
고이 포장돼 온 100개의 북다트는 동그란 깡통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헛돌기만 했다. 한참을 씨름하다 구매 사이트의 게시판을 찾았다. 수많은 후기 중에 간간이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평소 물건을 살 때 후기를 꼼꼼히 읽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왜 그러지 않았는지 잠시 나를 탓했다.
다행히 친절한 내 ‘동지들’은 자신만의 해결법을 공유해 줬다.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방법은 목장갑을 끼고 돌리는 것이었다. 동네 마트를 돌아다니며 목장갑을 구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처참히 실패했다. 다음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 방법은 교환이었다. 며칠을 기다려 새 제품을 받았지만 또 같은 불량품이었다. 그래도 연 사람이 있다고는 하니 포기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친구는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며 북다트 케이스를 가져갔다. 한참이 지나고 전화가 왔다. 그는 취기가 있는 목소리로 “열었어!”라며 기뻐했다. 그가 친구들과 만나 이 ‘미션’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귀인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만났을 때 그는 기죽은 얼굴로 고백했다. “내가 어제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취해서 다시 닫았나 봐….”
북다트는 먼 길을 돌아 원래 모습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후기 중에는 망치로 케이스를 부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북다트와 목장갑과 혹시 열게 되면 옮겨 담기 위해 사놓은 새 케이스에 망치까지 얻고 싶진 않았다. 그때, 오래 덮어뒀던 책 사이에서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엽서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이게 여기 있었다니!”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 책과 영화가 함께 내 시간을 공유했던 그때 그 감각에 휩싸였다. 그러고 나니 웃음이 났다. 엽서는 또 새로운 책장과 책장 사이로 옮겨졌다. 다시 그 엽서를 만날 때는 북다트와 씨름했던 시간도 함께 기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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