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호 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
5년간 군장병 40만명 독서지도
“부대 일과 후엔 책읽기 최적 환경, 대부분 취업 앞둬 자기계발 필요
서평 써보면 내용이해 큰 도움돼”
김을호 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이 자신이 만든 ‘따따하닐쌈일(WWH131)’ 서평 쓰기 형식(왼쪽)과 이에 맞춰 한 장병이 작성한 서평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김 회장은 2015년부터 40만 명에 달하는 군 장병을 대상으로 독서 및 서평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대한민국 군대는 국격 상승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군에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고 제대한다면 책 안 읽는 사회 풍토도 바뀔 겁니다.”
김을호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55)은 2015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40만 명 이상의 군 관계자들에게 독서 지도를 하고 있다. 대상도 훈련병부터 일반 장병, 위관급부터 장성급 장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를 통해 대한민국에 책 읽는 병영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독서 대통령’이다.
그에게 군대는 “독서 생태 환경이 잘 조성된 곳”이다. 일과시간 이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지금과 달리 그가 처음 독서 지도에 나섰을 땐 독서만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지휘관들도 장병들의 자기 계발과 인성 교육에 도움이 된다며 독서 문화 확장에 앞장섰다.
그가 군인 대상 독서 지도에 나선 것은 황인권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57)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당시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이던 황 사령관이 그에게 특강을 요청했는데, 그의 수업에 학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따따하닐쌈일(WWH131)’이라는 독특한 강의 이름은 김 회장이 만든 것으로, 서평 쓰기 형식의 독서 방식이다. 따따하(WWH)는 “책의 저자가 ‘어떤 이유(Why)’로, ‘무슨 내용(What)’을 담았는지, 책의 메시지를 ‘어떻게(How) 실천할지’를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조어이다. 인터넷 주소 ‘www’를 ‘따따따’라고 부르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다. 닐쌈일(131)은 독후감 정리 요령이다. 책을 읽고 든 생각을 한 가지 쓰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 3가지를 적은 뒤 하나의 최종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 김 회장은 “서평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내 방식대로 한다면 조금은 쉽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서에 재미를 붙이려면 “지금 내게 절실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독서 수업이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은 비결도 “취업과 연관된 책 읽기와 서평 쓰기”에 있었다. 제대하는 순간부터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장병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취업이라는 점을 간파한 결과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독서법을 ‘생존 독서’라고 부른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익히고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다. 그는 “취업 면접 때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겠다던 장병들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찾고 자신감 있게 말하고 쓰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각급 부대에 그를 강사로 초청할 정도로 현재 그의 독서 강의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서 지도를 받는 군 장병이 연간 15만 명에 달할 정도다. 김 회장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한 이후 병영을 직접 찾지 못하고 있다. 대신 군부대 장병 및 간부 자녀들에게 ‘집콕’용 도서를 기증하며 독서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부터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고 자기 계발에 힘쓰자는 의미를 담은 ‘격몽요결 100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 선생이 후학 교육을 위해 만든 책으로 입지(立志), 혁구습(革舊習) 등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 깨쳐야 할 10가지 덕목을 제시한 정신교양서이다. 김 회장은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고 100일 동안 독서와 서평일지를 쓰는 자기 계발을 겸한 독서 캠페인”이라면서 “이미 많은 군부대에서 진행 중인데 임무를 끝낸 곳도 여러 곳 있다”며 활짝 웃었다.
독서문화진흥회는 1991년 고 서정주 시인과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이응백 서울대 교수 등이 ‘책 읽는 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를 만든 뒤 이듬해 설립한 단체다. 입시학원의 스타 영어 강사였던 김 회장은 2005년 지인을 통해 이 단체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이사로 참여했고 그해 9월 회장에 오른 뒤 현재까지 맡고 있다. 독서문화진흥회는 민간 자격증 발급을 총괄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인증한 서평지도사 자격증(1∼3급) 발급도 대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5000여 명에게 자격증이 주어졌다. 김 회장은 올해부터 숭실대 대학원에서 독서경영전략학과 교수로 전문 독서 경영인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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