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는 튼튼한 건축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늑대의 입김을 견뎌낸 벽돌집이 현대건축에서는 ‘튼튼한 건물’의 상징이 아니다. 벽돌은 시공이 용이한 철근콘크리트 벽체에 덧붙이는 외피 장식재가 된 지 오래다.
“재료는 벽돌. 인근 백송 터 자취에 호응하는 이미지를 갖춘 건물을 원한다”는 것이 최근 완공한 서울 종로구 통의동 오피스빌딩 ‘브릭웰(brickwell·벽돌우물)’ 건축주의 요구사항이었다. 재료와 주제에 대한 조건을 받아든 강예린(47) 이치훈(40) SoA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치장재로서 벽돌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실현해 보자”는 취지로 작업에 착수했다.
벽돌쌓기 시공 현장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벽돌 위에 모르타르를 개어 올리고 다시 벽돌을 쌓은 뒤 줄눈을 정리해 마감한다. 브릭웰의 벽돌쌓기는 여기에서 모르타르와 줄눈을 제거했다.
“보통 벽돌 중앙을 보면 구멍이 3개 뚫려 있다. 벽돌 접면에서 모르타르가 아래위 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단단하게 붙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기본 디자인을 이용해 그 구멍을 관통하는 강철관이 벽돌 벽체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으면 훨씬 더 깔끔하고 유연한 디자인의 벽돌 구조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이)
벽돌 벽체를 올릴 자리에 강철관 골조를 먼저 얽어놓은 다음 진주목걸이를 꿰듯 벽돌을 하나씩 끼워 올린 것. 벽돌과 벽돌 사이를 띄우는 줄눈 대신으로는 2cm 두께의 폴리염화비닐(PVC) 이격재(離隔材) 2만 개를 주문 제작해서 사용했다. 목걸이의 진주와 진주 사이에 끼워 넣은 작은 장식구슬과 비슷하다.
질척거리는 모르타르에서 벗어난 벽돌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얻었는지는 건물 중앙 옥외정원에 서서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지름 11m 원형 정원의 4층 위를 가로지른 방형 도리 밑면에 벽돌이 꿰여 매달려 있다. 모르타르로는 고정할 수 없는 천장 마감재로도 벽돌을 사용해 건물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벽돌로 감싼 모습이 되도록 한 것이다.
“보통 벽돌 두께가 약 7cm인데 그걸 3등분해 더 얇게 만들어 썼다. ‘벽돌을 쌓아 둘렀다’는 느낌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서다. 부분적으로는 이격재 수를 조절해 벽돌이 쌓이는 간격에 변화를 줘 동적인 느낌을 살렸다.”(강)
브릭웰의 서쪽 외벽은 그러데이션(gradation·농담의 점층적 변화로 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기법)을 적용한 그림처럼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가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으로 전해져 오랜 세월 사랑받았지만 20년 전 고사해 앙상한 자취만 남은 백송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우물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외벽이다.
“넉넉한 면적을 외부에 개방해 백송 터와 연결시켰다. ‘1m²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방향성을 갖기 마련인 보통 상업 건물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설계다. 방문객과 주변 보행자에게 건물이 자리한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싶다는 건축주의 뜻이 작용한 결과다.”(이)
서울 서촌을 동경해 온 60대 건축주는 5년 전 SoA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뜰에 드리웠던 ‘갈대 그늘 파빌리온’을 보고 감탄해 두 건축가를 찾아왔다. 동그란 정원에 녹음이 짙어지면, 앙상한 밑동만 남은 이웃 백송의 쓸쓸함이 조금은 덜어질 게 틀림없다.
::강예린-이치훈 대표::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강예린), 연세대 건축공학대학원(이치훈) 졸업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젊은건축가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젊은건축가프로그램전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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