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이상한 일은 종종 있었다. 나는 세월호 소식을 군대에서 접했다. 만성 기흉(氣胸) 덕에 입대 전 신검에서 3급을 받고, 논산훈련소 입소 후 의무대에서 재검을 기다리다 배가 뒤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말에 종교 활동을 갔다가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월호 이야기는 자대 배치를 받고 난 뒤에도 종종 들려왔다.
제대 후에는 ‘정유라 게이트’가 터지더니 이화여대에서 시작한 시위가 광화문까지 번지는 것을 보았다. 영화를 보러 종로에 갈 때마다 시위대를 볼 수 있었다. 많은 구호 속에서 확실한 것은 탄핵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다 들었다. 의외로 조용했다. 기뻐서라기보다는 그냥 다들 웃었다. 그 다음 주 논리학 수업에서 판결문 전문으로 수업을 했다. 교수님도 날마다 보는 일이 아니니 정독하고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냐고 웃으면서 말했다.
웃음의 의미는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알게 됐다. 누군가 스터디에서 대충 결과는 알 거 같고 뭐든 바뀌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들 관심은 있되 기대가 없었다. 취업이나 했으면 좋겠다면서 스펙을 준비했다. 그들 중 극히 일부는 이름을 들어본 회사에 들어갔고 절반 정도는 어쨌거나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1년을 지내고 보니 코로나19가 와 있었다. 대학에는 펜스가 쳐졌고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 대학병원은 코로나 관련 현수막을 내걸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을 나서는 게 이상한 상황이 됐다. 그 와중에도 선거는 다시 돌아왔다.
지난 시간을 적고 보니 하수상한 연속이었다. 도도하다기에는 정신없고, 산만하다기에는 정교했다. 참으로 ‘버라이어티’했다. 위안을 얻은 게 있다면 아직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혼자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끌고 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극장에는 늘 다른 누군가가 한 명은 있었다. 위험을 뚫고 욕먹을 각오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온 또 한 명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 왔던 것 같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서 얻는 위안이란 신비하다기엔 경박하고, 품위 없다기엔 우아한 듯하다.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플로렌티노는 오래도록 사모하던 페르미나와 한때 풍요로웠던 마그달레나강으로 돌아온다. 오염과 개발 때문에 기름 덩어리로 변한 풍경을 배 위에서 바라본다. 그는 선장에게 말한다.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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