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색화의 거목’ 윤형근 화백(1928~2007)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편해진다. 린넨, 캔버스 및 한지 위에 먹색 기둥이 솟아오르고, 수묵화 특유의 번짐이 나오는 작품에 화려함은 없다. 그럼에도 그 꾸밈 없는 깔끔함의 힘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오는 6월20일까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윤형근의 회고전 ‘윤형근 1989–1999’에서도 그 강렬함이 퍼져나온다. 특히 원숙한 작업을 펼치던 시기의 윤형근 작품들이 전시돼 더욱 깊은 느낌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 작업에 비해 보다 구조적이면서도 대담한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말 사이에 제작된 대작 위주의 회화 및 한지 작업 등 20여점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윤형근은 자신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의 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1991년 ‘미니멀 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1928~1994)와 만나면서 그 ‘선비의 미학’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한국적인 모더니티’로 성장한다. 당시 재료와 형태의 단순함으로 환원한 서구 미니멀리즘을 포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도널드 저드의 판화 작품이 한 점씩 걸려있는데, 두 작품은 윤형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윤형근의 작품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윤형근 선생님께서는 ‘인간 자체와 작품이 일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본인도 늘 그 지점을 향해 매진했다”며 “가계부터 삶까지 학자집안에 성품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선비였다”고 말했다.
실제 윤형근의 선비정신은 그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국립 서울대 설립안’ 반대 운동에 참여해 제적 당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 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다.
또한 전쟁 중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으며,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장 지원으로 부정입학한 학생의 비리를 지적했다가 고초를 겪고, 1980년대 초까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고고했던 윤형근의 ‘선비정신’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형근의 작품들은 다른 단색화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품 외형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진득하게 그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외형을 보고 있으면 윤형근의 삶, 그리고 그가 평생을 키워온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방탄소년단(BTS) 리더인 RM(김남준)이 앞서 지난해 방문한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미술관 윤형근 전시와 미국 뉴욕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린 윤형근 전시의 뒤를 잇는 회고전이다. RM이 왜 윤형근의 전시를 매번 찾는지 궁금한 팬들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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