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세상에 필요한 까닭이 뭘까. 건축사사무소 OBBA 이소정(41) 곽상준(40) 소장이 설계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청바지 도매업체 사옥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엇비슷한 모양새로 빼곡히 늘어선 연립주택, 상가들과 어색하지 않게 이웃하면서도 골목에 은근히 특별한 색채를 더한 건물. 환자에게 증상을 설명하는 의사처럼 꼭 필요한 단어만 쓰면서도 옹골찬 주견을 드러내는 이 부부 건축가를 많이 닮은 공간이다.
청바지라고 뭉뚱그려 불리지만 같은 디자인이라도 모든 청바지는 제각기 다르다. 원단의 성질, 가공의 정도, 잘라내고 덧댄 방식이 미묘한 차별성을 결정한다. 층별로 질감을 달리해 마감한 이 건물의 노출콘크리트 외벽은 그곳 사람들이 온종일 끌어안고 움직이는 청바지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1, 2층 외벽의 콘크리트 거푸집은 나무 부스러기를 접착제와 혼합해 압착시킨 OSB합판으로 짰다. 표면에 코르크의 질감을 남기는 재료다. 3, 4층은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고압 살수 장치로 물줄기를 쏴 거친 질감을 불규칙하게 표현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긁거나 찢어 맵시를 내는 청바지 원단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5층은 보통의 깔끔한 노출콘크리트 마감이다.”(곽)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뭐랄 사람 없다. 주변 다른 건물들처럼 타일을 감싸 붙이거나 평범한 노출콘크리트 마감을 통째로 적용하면 시공 기간과 비용이 줄었을 거다. 하지만 건축주와 건축가들은 평이함 너머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동의했다. 그 덕분에 이 골목 공간은 독특한 표정을 얻었다.
“사람들이 ‘오빠’라고 읽는 사무소 명칭은 ‘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의 약자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보와 시각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풍요로움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그냥 원래 다 그런 거잖아’ 하고 무심히 넘기는 것들에 대해 ‘그게 왜 당연하지?’라고 던지는 질문이, 모든 우리 작업의 출발점이다.”(이)
건물 서편 샛길을 몇 발짝 돌아들면 고요한 뒤뜰이 나타난다. 뒤뜰을 굳이 마련하지 않아도, 역시 뭐랄 사람 없다. 하지만 이곳에 서서 바깥 찻길 소음을 말끔히 잘라낸 네모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공간이 왜 필요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머무는 이들이 지친 오후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소중한 틈새다. 유럽 고택들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중정(中庭)을 닮았다.
2년 전 서울 서초구에 지어진 지상 15층 규모의 오피스빌딩 또한 심심한 도심 한쪽 모서리에 기묘한 방점을 더한 건물이다. 엘리베이터, 계단, 화장실 등에 할애한 공간의 평면과 업무용 공간의 평면을 뚝 갈라 떨어뜨려 놓고 직육면체 두 개를 나란히 쌓아 올렸다. 그 틈새 공간의 마주 보는 외벽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육각형 알루미늄 패널 5000여 개를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였다. 햇빛과 구름의 움직임을 쉼 없이 난반사하는 점이지대다. 방문자들은 건물 진입부 바닥면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환각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을 만난다.
“건물의 전형에 대한 한정된 사고의 틀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영역 밖의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는 게 우리 작업의 목적이다. 건축가의 작업 영역이 건물 짓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어떤 대상과 이슈든 체험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을 고려해 보는 계기로 작용하고 싶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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