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다이닝바에서 피어난 오미자술 ‘오미로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6일 03시 00분


스페이스오의 ‘오미로제 결(結)’. 이윤화 씨 제공
스페이스오의 ‘오미로제 결(結)’. 이윤화 씨 제공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그는 양조학을 배우기 위해 스코틀랜드 유학길에 올랐다. 같이 공부하던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술을 비교해 마셔 보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 전통주는 다른 나라 술과 비교하니 한약재 향과 단맛이 유독 강했다. 한술 더 떠서 술에서 조미료 맛까지 난다는 교수의 평에 웃음이 터졌다. 이 경험이 세계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술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됐다.

그는 오미자로 여러 가지 술을 개발한 이종기 박사(오미나라 대표)다. 수차례 프랑스를 오가며 배워온 전통 샴페인 제조 방식을 오미자술에 적용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힘차게 올라오는 기포와 은은하며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오미로제’가 탄생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좋은 술을 선뜻 알아보고 마셔주지는 않았다. 그 술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스토리를 만들고, 디자인을 입혀 알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오미로제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전재식 씨였다. 그는 술 자체의 매력뿐 아니라 만들어진 이유와 과정, 쉼 없이 도전하는 이 박사의 스타일에 푹 빠져들었다.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오미자의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이 녹아난 술을 한식 주점에 진열하기에는 성에 안 차고, 양식당 전용으로 판매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결국 전 씨는 오미로제와 어울리는 음식과 분위기를 갖춘 다이닝바 ‘스페이스오’를 열게 됐다. 서울 인사동길 한편, 햇살이 내리쬐는 루프톱에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이 공간은 한국적이면서도 모던하다. 외국인이라도 편하고 쉽게 우리 음식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정관념에 갇힌 음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다 보니 전 씨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지휘한다. 부각 위의 으깬 초당두부는 음성고추 매운맛이 살짝 감돈다. “송이버섯과 낙지가 만나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를 가진 ‘송이낙락’은 치아시드의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한입 요리로 나온 어린 배추 속에는 감태 명란젓 블루베리 리코타치즈와 들기름이 조화롭게 들어가 있다. 거기에 술을 발효시키고 남은 오미자를 건조한 작은 칩이 깨소금처럼 뿌려져 있다. 다섯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계절 요리로 정성과 창의성이 넘쳐난다.

‘오미로제 결(結)’과 ‘오미로제 연(緣)’이라는 이름만 봐도 세상과의 맺음과 인연에 대한 이 박사의 갈구가 물씬 느껴진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더 빛나게 했던 것은 당대 미술평론가인 표암 강세황의 화평이 한몫했던 것처럼 오미자술의 품격 있는 평론을 제대로 세상에 전달하는 곳이 스페이스오가 아닐까 한다. 오미로제 한잔이 잘 어울리는 봄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
 
○ 스페이스오(space O)=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9, 우리한입 1만5000원, 송이낙락 1만7000원, 오미로제 결(1잔) 1만9000원
#오미자술#오미로제#스페이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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