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문자 추상 선구… 노담 김영주
선으로 분할된 화려한 평면… 한글과 하트 등 문자-기호로 가득
서양 추상과 닮지 않은 독창성… 캔버스 전면에 재치와 생동감 넘쳐
딥 컷(Deep Cut).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이 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곡, ‘숨은 보석’을 가리킨다. 한국 미술에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딥 컷’이 있다. 다만 장식적 취향이나 접근성의 한계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미술의 ‘숨은 보석’을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추상(抽象)은 이야기가 없는 그림일까. 노담(老潭) 김영주(1920∼1995)는 “형상성 있는 추상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의 추상에는 시끌벅적 이야기가 넘친다. 화려한 색과 리드미컬한 선, 하트, 손바닥 같은 기호와 한글로 적은 글귀까지.
195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는 추상미술의 바람이 거셌다.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의 추상표현주의가, 유럽에서는 장 뒤뷔페 등의 앵포르멜 회화가 주목받았다.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김영주는 이 흐름을 재빨리 포착했고 글을 통해 추상미술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러면서 추상미술을 탐구했다.
피터르 몬드리안이 풍경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기하학적 추상을 그린 것처럼 김영주는 자신의 의식을 기호로 바꿔 캔버스에 새겨 넣었다. 구체적 표현을 생략하고 작가 고유의 상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추상미술의 방법론이라고 본 그는 이를 문자와 결합했다. ‘그림’에서 문자가 된 한자, 그리고 한글을 다시 그림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그의 1991년 작인 ‘신화시대’의 신화시대란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세상을 말한다. 그 세상은 시공을 초월한 기호와 문자로 가득하다. 요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연상케 한다. 이응노(1904∼1989)와 남관(1911∼1990)과 달리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1960년대 말 평론을 멈췄던 그가 ‘신화시대’를 발표하자 ‘서양 작가의 누구 것도 닮지 않은, 그러면서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 미국 뉴욕 한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모습을 미국에 정면으로 보여주고 싶다.”
::노담(老潭) 김영주(1920∼1995)::
▽192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43년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 졸업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 ▽1970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1992년 은관문화훈장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김영주’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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