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계승 인식’ 1, 2권
정치-경제-문화적으로도 큰 차이… 中, 日의 만주 침략 이후 편입 시도
‘성대한 공훈을 이루고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아름다운 문장 중화에 남아 있네(盛勳歸舊國 佳句在中華·성훈귀구국 가구재중화)’
당시 전집 ‘전당시(全唐詩)’에 실린 당나라 때 인물 온정균의 시 ‘발해 왕자를 본국으로 보내며(送渤海王子歸本國·송발해왕자귀본국)’의 한 구절이다. 당대 문인이 발해를 읊은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시는 당이 발해를 다른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눠 살핀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 1·2권(사진)을 최근 발간했다. 우성민 재단 연구위원은 당시와 문집을 검토한 글에서 “당대(唐代) 중국 문인들은 고구려와 발해, 신라를 모두 해동이나 삼한으로 지칭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려는 태조 왕건부터 발해와의 혼인관계를 강조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무도한 민족으로 적대하면서 발해에 동족의식을 보였다.
이처럼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사였지만 중원의 역대 왕조는 자신의 역사로 간주한 적이 없다고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은 밝히고 있다. 편찬책임자인 임상선 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중원의 역대 중국 왕조는 이른바 장성(長城)을 경계로 남쪽을 화(華), 바깥을 이(夷)로 구분했는데 이는 정치 경제 문화 민족적 측면에서도 공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였다”며 “중국 학계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20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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