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의 마지막 방송일인 10일,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만난 진행자 강석(68)은 “청취자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무릎 위까지 차올랐던 날 도로에 차를 버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뛰었던 그날을 회상했다.
“차를 길에 세우고 뛰어 가보고 버스도 탔는데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았어요. 근처 군부대에 들어가 사정사정해 군용차를 빌려 타고 겨우 제시간에 도착했죠.”
싱글벙글쇼에서 시사풍자, 콩트 등을 통해 청취자와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강석과 김혜영(58)은 현존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 최장수 진행자였다. 1973년 시작한 싱글벙글쇼에 강석이 1984년, 김혜영이 1987년 합류하면서 각각 36년, 33년 동안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30여 년간 청취자와의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김혜영이 1988년 결혼식을 올리던 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방송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강석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김혜영의 드레스 자락을 잡고 차에 태워 결혼식장까지 운전했다. 김혜영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걸 알지만 오늘이 헤어짐의 날이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청취자의 사연과 선물은 스튜디오에 끊일 날이 없었다. ‘건강 챙기시라’는 편지와 함께 온 보약, 벌꿀 등은 흔한 선물에 속할 정도였다. 자신의 꿈을 적어 보냈던 청취자가 목표를 이룬 순간도 함께했다. 교도소 수감 시절 ‘출소하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연을 보냈던 백동호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실미도’를 썼고, 출간 후 스튜디오에 책을 보냈다. 강석은 “청취자들 덕에 ‘롱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생방송이 진행된 MBC ‘가든 스튜디오’ 앞에는 애청자 30여 명이 모였다. 꽃다발을 손에 쥔 사람, 눈물을 닦는 사람도 있었다. 20년 동안 매일 싱글벙글쇼를 들었다는 신정미 씨(55·여)는 “힘들 때마다 큰 위안을 받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 곡은 강석이 고른 그룹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였다.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을 보낼 준비가 안 됐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이들의 하차 소식이 갑자기 알려진 데 대한 항의 글이 MBC 시청자 게시판에 쏟아졌다. 방송인 정영진이 후임으로 정해졌다가 과거 여성혐오 발언 논란으로 하차한 것도 ‘후임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두 사람의 빈자리는 11일부터 가수 배기성과 아나운서 허일후가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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