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m 길이 종이에 담은 ‘물처럼 출렁이는 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1일 03시 00분


루시드폴 곡 ‘물이 되는 꿈’ 가사로 同名의 그림책 펴낸 이수지 작가
이수지 작가 “가사가 직관적으로 다가와… 노래 들으며 달뜬 상태로 그려”
루시드폴 “편지 주고받으며 소통… 완성책 보고 용기 얻어”

이수지 작가가 18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5.7m 길이의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을 펼쳐 보였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담는 책의 형태 그 자체도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만든 그림책엔 소녀가 등장해 딸 바다(11)만 나온다면서 아들 산(13)이 서운해 했는데, 소년이 주인공인 이번 작품을 보고 산이가 무척 신났다”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수지 작가가 18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5.7m 길이의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을 펼쳐 보였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담는 책의 형태 그 자체도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만든 그림책엔 소녀가 등장해 딸 바다(11)만 나온다면서 아들 산(13)이 서운해 했는데, 소년이 주인공인 이번 작품을 보고 산이가 무척 신났다”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보조 기구를 단 소년이 수영장에 들어간다. 연꽃이 피어나고 강, 바다로 이어지며 소년은 자유로이 유영한다. 분수가 합창하듯 솟아오르고 달과 별, 새를 만난다. 파란 수채 물감으로 맑게 그린 그림들은 서로 이어져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신비로운 여정을 5.7m 길이의 종이에 담은 그림책 ‘물이 되는 꿈’(청어람아이)이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이수지 작가(46)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5)의 앨범 ‘오, 사랑’(2005년)에 수록된 ‘물이 되는 꿈’ 가사로 만들었다.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18일 이 작가를 만났다. 2014년 제주에 내려가 귤, 레몬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2018년 가을, 출판사가 루시드폴에게 ‘물이 되는 꿈’을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노래 가운데는 시인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가사가 많다. 그는 그림책을 여러 권 번역했고 동화책, 소설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곧바로 이 작가를 떠올렸다.

“이 작가님 팬이에요. 제 음악 세계와 정서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글자 없이도 하나의 서사를 지닌 작가님의 그림책을 좋아해요.”

부산 광안리 인근에 있는 초중고교를 졸업해 바다를 보며 자란 루시드폴은 물이 주는 편안함과 위안을 써내려갔다. 그는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물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툭 하고 터지듯 나왔다”고 했다.

‘물,/물이 되는 꿈…//강,/강이 되는 꿈/빛이 되는 꿈/소금이 되는 꿈//바다,/바다가 되는 꿈/파도가 되는 꿈…//별,/별이 되는 꿈/달이 되는 꿈/새가 되는 꿈….’

이 작가도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는 “가사가 담백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상보다 물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생각났다. 수영장에서 재활훈련을 하는 수중재활센터를 찾아갔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물에 들어가면 너무나 좋아하고 편안해 보였어요. 보통 계획을 세밀하게 짠 뒤 작업하는데, 이번 책은 이야기 구조만 정한 채 노래를 들으며 살짝 달뜬 상태에서 마음 가는 대로 그렸어요. 자유롭고 충만했습니다.”

이 작가는 책 가운데 제본선으로 바다와 모래사장을 나누고(‘파도야 놀자’), 거울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을 구분하는(‘거울 속으로’) 등 책의 형태를 흥미롭게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5.7m 길이의 이번 작품에서 책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특기가 ‘제대로’ 터져 나왔다.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 물처럼 흐르고 이어지는 느낌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코디언 형태를 떠올렸어요. 책을 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에게 ‘네 생각이 다 맞아’라고 말해주고 싶은 작품이에요.”

루시드폴은 “제주 집에서 1m 앞에 바다가 있어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안테나 제공
루시드폴은 “제주 집에서 1m 앞에 바다가 있어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안테나 제공
뒷면에는 루시드폴이 연필로 직접 그린 ‘물이 되는 꿈’ 악보를 담았다. 두 사람은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완성된 책을 본 루시드폴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협업을 하며 예술 세계가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루시드폴은 나무에 센서를 달아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비롯해 나무의 여러 소리를 채집하고 있다. 내년에 새 음반도 낼 예정이다. 그는 “음악적 장치들의 기름기를 빼고 목소리와 기타에 집중한 앨범을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은 이 작가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고, ‘파도야 놀자’는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꼽히는 등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포맷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물이 되는 꿈#이수지#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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