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날다, 놀다]<7·끝>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 황은후
‘몸과 여성’에 관심… 논문도 써
부친 故황현산 교수 비평 큰 힘
배우라는 한 단어로 황은후(37)를 설명하기엔 뭔가 아쉽다. 탁월한 연기로 무대에서 잘 노는 건 기본, 여배우로서 경험한 일들을 주제로 학술 논문도 썼다. 이 논문은 그의 손에서 다시 극으로 탄생해 직접 연출도 맡았다. 때론 작품에 쓰일 텍스트도 뚝딱뚝딱 써낸다. 재능을 총동원해 늘 무언가 만들고 고민하는 그는 ‘창작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배우다.
그는 지난해 제5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작인 ‘와이프’에서 데이지, 클레어 역을 맡아 사랑스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로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변화하는 젠더 지형 안에서 성(性) 소수자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표현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황은후는 “영국 초연 몇 달 만에 ‘와이프’ 대본을 넘겨받아 제작진과 번역 작업을 함께 했을 정도로 따끈따끈한 작품이었다”며 “작품을 통해 받은 동아연극상은 갑자기 떨어진 선물이었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 탓에 “누군가의 강한 에너지를 늘 부러워했다”는 그는 학창시절 우연히 본 연극에서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와 생동감을 느꼈다. 심지어 “현실보다 무대 위 가상세계가 제가 살고픈 진짜 삶 같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연극반에 이어 대학에서도 ‘서강연극회’ 활동을 했고 꾸준히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최근 몇 년간 그의 관심 주제는 몸과 여자다. ‘성별화된 몸이 여자 배우의 연기를 위한 창조적 준비상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만든 ‘좁은 몸’을 비롯해 ‘와이프’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마른 대지’ 등의 작품에 그의 고민이 녹아 있다.
배우 김정과 함께 만든 창작집단 ‘사막별의 오로라’에서도 젠더 이슈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페미니즘 얘기를 하려고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우리들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여성과 몸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면서 “막상 연기인생을 돌아보니 사연 있고 슬픈 여자 역할만 많이 맡은 것 같다”고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의 딸이다. “아버지 전공인 불문학은 대학 학과 선택에서 가장 먼저 배제했다”고는 하지만 예술비평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응원을 받으며 연극을 했다. 딸의 작품을 자주 본 아버지에게서 나름의 비평도 들어야 했다. 그는 “예술인에게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아시면서도 예술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신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시인은 30만 원으로도 당당히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글을 좋아해요. 앞으로도 당당히 제 이야기를 펼치는 배우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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