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 조각가 류인 회고전
생략되고 왜곡된 인체 묘사 구상조각의 독보적 존재
소마미술관 작가 재조명 기획전 작품과 자료 100여점 소개
“내가 마흔을 넘길 수 있을까.”
조각가 류인(1956∼1999)은 이따금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대학생 시절 사진 속 작품 옆에 선 그는 왜소하고 마른 체구가 마치 소년 같다. 작업 노트엔 진찰 약속과 복용해야 할 약 목록이 적혀 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요절할 운명을 예감한 듯 짧은 기간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15년가량의 작업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류인―파란에서 부활로’가 서울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관장 민도평)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 사후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인의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는 처녀작인 ‘자소상’으로 시작한다. 공모전 수상작인 ‘여인입상’을 비롯해 설치작품 ‘흙―난지도’ 등 총 4점이 작가 사후 최초로 공개됐다. 또 전시장 밖에 설치된 ‘부활―그 정서적 자질’은 서울 예술의전당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으로 처음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두 번째 공간에서 보이는 ‘파란 I’(1984년)과 ‘입산’ ‘하산’ 등의 작품은 작가가 대학원 재학 시절 제작한 작품이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류인은 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네 번이나 재수를 했다고 한다. 이 시기 고민 끝에 나온 작품들로, 초기 단정한 신체 조각에서 벗어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신체의 일부분만 표현하거나 인체의 비율을 왜곡해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급행열차―시대의 변’은 류인을 미술계에 강렬하게 각인시킨 화제작이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부림치는 신체들이 기찻길 위에 줄지어 서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급행열차’와 함께 전시된 ‘푸짐한 식사’는 쟁반 위에 뚜껑이 열린 듯 표현된 두상을 올려 두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정나영 전시학예부장은 “류인은 신체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것을 생략하고 왜곡하거나 오브제로 대체해 1980, 90년대 사회상을 표현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에 마련된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류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작업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인 빌헬름 렘브루크(1881∼1919)를 연구했고, 자코메티나 로댕의 책을 수집한 흔적도 남아 있다. 또 인터뷰 영상을 통해 동료 조각가들이 본 류인의 생전 모습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에서 2007년부터 시작한 ‘작가 재조명’ 기획 시리즈의 다섯 번째 전시다. 2007년 ‘김주호, 박한진, 이건용―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이 첫 전시였다. 이후 ‘신성희-한순자’(2009년), ‘김차섭, 전수천, 한애규―긴 호흡’(2014년) 등 2인전, 3인전 형식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새롭게 조명할 가치가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작가정신과 시대정신을 부각시켜 살폈다.
그러다 2018년부터는 한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개인 회고전으로 전환했다. 그 첫 전시는 ‘황창배―유쾌한 창작의 장막’이었고 두 번째 회고전 작가가 류인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유명 작가인 류경채(1920∼1995)의 아들이기도 한 류인은 1981년 학부를 졸업했다. 1983년 목우회 특선, 198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았지만 1999년 간경화로 사망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1000∼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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