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제한 시대에 듣는 ‘방랑 작곡가’ 슈베르트[거실에서 콘서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리처드 용재오닐 희망 콘서트

리처드 용재오닐이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발췌곡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TV 유튜브 캡처
리처드 용재오닐이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발췌곡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TV 유튜브 캡처
슈베르트는 방랑에 최적화된 작곡가였다.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의 삶이 곤궁했지만 떠도는 삶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슈베르트의 작품이 가리키는 나침반은 ‘방랑’에 맞춰져 있었다. 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가 떠도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고, 피아노곡 ‘방랑자 환상곡’이 있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 여럿이 저벅저벅 걷거나 뛰는 것 같은, 끝없는 행로를 그린다. 초기 가곡 ‘물레 잣는 그레첸’부터 한없이 돌아가는 물레의 모습이 반주부를 수놓는다. 말발굽 소리가 줄곧 들리는 ‘마왕’도 그렇다. 큰 곡들도 마찬가지다.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는 첫 악장부터 마지막 악장까지 각 악장에서 템포의 변화를 찾기 어렵다. 큰 공을 휙 굴리면 지평선을 넘어 한없이 등속(等速)으로 가는 무한의 방랑 같다.

그러나 이 시대에 ‘겨울 나그네’ 주인공 같은 방랑은 불가능하다. 주인공은 지나가는 우편마차를 보며 연인의 안부에 가슴을 두근거리는 대신 보리수 아래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이동제한을 어겼다고 붙들려 격리될지도 모른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이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 ‘당신을 위한 기도’에서 슈베르트 ‘마왕’과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 등 여러 곡을 다른 작곡가의 작품들과 함께 연주했다. 하피스트 에마뉘엘 세송,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와 함께 공연할 계획이었으나 이들이 글로벌 팬데믹 여파로 한국을 찾을 수 없게 되면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코프스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과 함께하는 무대로 바꿨다. 객석 간 거리 두기로 적은 수의 관객만 참석했고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동영상 보기(www.youtube.com/watch?v=6VOMF8-gnmU)가 가능하며 유튜브 검색어 ‘crediatv’. 26일 오후 8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도 같은 내용의 공연이 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리처드 용재오닐#희망 콘서트#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