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흑인 희화화 광고 빈번… 모델부터 임원까지 백인 편중 등
정작 본질적 문제엔 소극 대처, 냉소적 여론 “흑인부터 중용을”
전문가 “마케팅보다 중요한것 간과”… 향후 대응에 전향적 태도 주문
대중음악-영화계선 실질적 지원, 시위 지지 휴무-기부 등 잇달아
《백인 경관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가 숨진 이후 인종차별과 경찰력 남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을 2주 가까이 뒤덮고 있다.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산업계를 비롯해 고급 패션 및 명품 업계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위 취지에 동참했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의 공격 표적이 된 명품 업계는 SNS에서도 냉소를 받고 있다.》
○ ‘명품업체 시위 동참의 진정성 의심’
샤넬 루이비통 펜디 프라다 등 대다수 명품 및 디자이너 브랜드는 플로이드 추모 시위를 지지하는 ‘#블랙아웃 튜즈데이(#blackouttuseday)’ 운동이 시작된 2일(현지 시간)을 전후해 SNS의 광고 마케팅을 일시 접고 일제히 검은 화면을 드러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같은 추모 해시태그로 애도의 뜻을 전했고, 경쟁적으로 ‘차별에 반대한다’ ‘우리가 바꿀 것’ 같은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SNS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갑을 열어라’ ‘말만 하지 말고 돈을 써라’ ‘후원을 하고 흑인을 중요한 자리에 앉힌 다음 평등에 대해 말해라’ 같은 비아냥거림이 주를 이뤘다. 티파니앤코는 브랜드 상징색인 민트색 티파니블루 화면에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이고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란 애매한 문구를 썼다가 ‘비겁한 표현’ ‘나약하다’ ‘팔로 취소’ 등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업체는 사과한 뒤 입장문을 다시 냈다.
브랜드명 ‘마크 제이콥스’를 지우고 경찰의 과도한 행위에 희생된 흑인들 이름을 아래위로 쓴 명판.사진 출처 마크 제이콥스 인스타그램분위기가 더 악화될 것을 의식한 듯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분노한다’(프라다) ‘우리는 이 전투의 동맹군’(디올)같이 더 명확하고 강력해진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다. 돌체앤가바나는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흑인인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도 명품업체들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시선은 여전하다. 이 같은 반감의 뿌리는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 업체들이 SNS에서 몇 마디 거드는 것 이상의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는 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프라다, 구찌, 돌체앤가바나 등은 최근까지도 흑인을 희화화한 스웨터와 액세서리, 동양인을 비하하는 화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인권감수성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줬다. 패션산업 자체가 ‘미의 기준’으로 삼는 모델에서부터 주요 임원진까지 백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징도 있다. 패션전문지 ‘보그’는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하이엔드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불평등의 아바타”라고 했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 방식만 안이하게 고수해 화를 자초한다는 평가도 있다.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SNS에 약탈된 자신의 매장 간판 사진을 올리며 “약탈이 폭력이란 말을 믿지 마라. 배고픔이 폭력이고 노숙이 폭력이다”라고 썼다. 이번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그였지만 “약탈도 ‘미학적 캠페인’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냉소를 받았다. 흑인 패션 브랜드 파이어모스의 디자이너 커비 진 레이먼드는 “회사 법무팀이라도 흑인 관련법 수정을 돕도록 하라. SNS에서 멍청한 말 하는 건 제발 그만”이라고 꼬집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대표 버질 아블로는 흑인운동가 단체에 50달러를 기부한 영수증을 올렸다가 악화된 여론에 기름만 끼얹은 꼴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진짜 기부한 2만 달러(약 2400만 원) 중 일부였다고 해명했지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각 명품 브랜드의 태도와 대응방식이 향후 대중의 소비나 투자 등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GQ’는 “마케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브랜드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소호의 돌체앤가바나 매장 유리창이 일부 시위대의 약탈로 깨졌다. 사회적 불평등 관련 문제에 미온적이던 패션계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비난은 온라인에서도 빗발친다. 버버리, 디올, 펜디 같은 명품 업체는 애도와 규탄 성명을 연일 발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후원과 행동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 대중음악계 시위 지지… ‘긍정적’
대중음악과 영화계에서는 실질적인 후원과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 소니뮤직 등은 ‘블랙아웃 튜즈데이’ 날 하루 휴무했고 각 한국지사도 이날 SNS에 홍보물은 한 건도 올리지 않았다. 소니뮤직은 “적절하다 생각하는 조직과 단체를 후원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대중음악계에서 흑인음악의 유산이 상당한 만큼, 너 나 없이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1위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는 흑인 인권 운동을 촉구하는 추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전진 배치했다.
넷플릭스, HBO 맥스, 아마존 스튜디오 등과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시위 지지에 나섰다.
워너브러더스는 흑인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을 다룬 영화 ‘저스트 머시’를 이달 한 달 디지털 플랫폼에서 무료 공개했다. 디즈니는 흑인 인권단체를 포함한 사회단체에 500만 달러(60억6300만 원)를 기부했다. 밥 체팩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인종차별과 폭력은 절대 용인될 수 없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영화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도 4일 25만 달러(약 3억300만 원)를 인권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배우 존 보예가는 3일 시위에 참여해 “향후 연기 경력에 지장을 줄 수도 있지만 상관하지 않겠다. 우리는 합당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연설하며 울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머시 섈러메이도 시위 현장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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