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요리책은 쌓이고 쌓였지만 유용한 요리책은 드물다. 서울 용산구에서 조리 워크룸 ‘컴바인’을 공동 운영하는 백지혜 씨가 최근 낸 ‘파스타 마스터 클래스’(세미콜론)는 치장의 군살을 말끔히 걷어낸 요리책이다. 말랑말랑한 감상문, 윤기를 과장해 눈을 현혹하는 음식사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재료, 도구, 사전준비, 조리에 꼭 필요한 텍스트와 사진만 추려 간명하게 묶었다.
8일 만난 백 씨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독자가 오로지 자신을 위한 ‘위로의 요리’를 최대한 간단히, 그러면서도 멋지게 만들어 먹을 수 있길 바라며 쓴 책”이라고 말했다.
“시작은 19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처음 맛본 전통요리 굴라시였다. 진한 육개장에 빵을 찍어 먹는 느낌이었는데, 맛있는 음식이 안기는 위로를 경험했다. 그때 ‘언젠가 내 식당을 열고 이 요리를 메뉴에 넣자’고 생각했다. 그 뒤로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맛본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보며 나름의 조리법을 익혔다.”
백 씨는 전문적인 요리 교육을 받은 경험은 없다. 유학과 해외업무 중에 혼자 생활하며 뭔가 어떻게든 만들어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차곡차곡 쌓은 경험치를 활용한다. 무협만화로 비유하자면 무림 정파(正派) 제자가 아니라 무수한 실전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고수인 셈이다. 그는 “전문 요리사들에 대한 경외감은 당연히 갖고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익힌 생활요리법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영국 런던과 싱가포르에 머물며 조리법을 간소화한 잡채, 닭볶음탕, 해물파전을 만들어 외국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먹었다. 맛있는 걸 찾아먹는 것만큼,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된 시기다.”
이번 책에는 냉이 마늘종 참나물 고사리 들깨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를 활용한 파스타 조리법 32종을 담았다. 백 씨는 “좋아하는 건 한식이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빠르게 간단히 만들어 천천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요리는 파스타”라고 말했다.
홈메이드 파스타의 맛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백 씨의 조언은 두 가지다. 파스타 면은 포장지에 적힌 조리시간보다 2분 일찍 끓는 물에서 건져내 볼에 담아 올리브유를 2큰술 뿌려 버무려둘 것. 냄비에서 건져낸 뒤에도 잔열에 의해 면이 익는 점을 감안한 팁이다. 너무 푹 익어 탱탱한 식감을 잃는 흔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면수의 활용. 면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반 컵 정도 남겨뒀다가 팬에서 면을 볶을 때 함께 넣으면 다른 재료와 면의 촉촉한 밀착감을 높일 수 있다. 접시에 옮긴 뒤 마무리로 레몬 껍질을 살짝 갈아 얹어주면 상큼한 풍미가 더해진다.
“파스타에 꼭 외국에서 쓰는 허브를 써야 할 까닭이 없다. 루콜라 대신 어린잎열무를 쓰면 식감이 더 아삭해진다. 고사리 파스타에는 치즈 대신 들깻가루를 쓴다. 상큼한 고소함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양파보다 대파를 많이 쓰는 편인데 양파볶음의 진한 단맛보다 쨍하게 상쾌한 대파볶음의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보령 씨가 맡았다. 음식 촬영이 처음인 김 씨가 보조조명 없이 찍은 사진들은 준비물과 조리법을 건축 설계도면처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촬영을 위해 만든 ‘가짜음식’ 이미지는 한 컷도 없다. 사진마다 ‘어서 찍고 빨리 먹어야지!’ 하는 솔직한 욕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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