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야(paell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8세기 아랍 사람들로부터 전래한 쌀을 이용한 발렌시아 지방 전통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스페인 전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신료라는 사프란의 노란색, 파프리카와 토마토의 붉은색은 그 자체가 완벽하게 스페인 국기를 표현합니다.
스페인다운 음식이지만 유럽 음식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의 영혼과 분리할 수 없는 쌀이 들어간 음식이기 때문이겠죠. 요즘은 유럽인도 쌀을 이용한 요리를 즐깁니다만 대개는 찰기 하나 없이 풀풀 날리는 인디카 계열 쌀을 사용합니다. 파에야에 쓰는 쌀은 우리 쌀과 같은 자포니카 계열이어서 더욱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파에야는 원래 바닥이 넓고 깊이가 얕은 냄비를 뜻하는 말입니다. 장작을 지펴 냄비를 얹고 구하기 쉬운 야채와 생선, 고기 등을 쌀과 함께 올리브유로 볶다가 육수에 끓여 익혀 내는 음식으로 태생 자체가 서민적이지요. 파에야는 그 인기만큼이나 조리법이 다양한데 공통적인 재료는 쌀, 올리브유, 야채입니다. 흔히 파에야 위에 화려하게 얹은 어패류나 육류, 초리소 등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어떤 쌀과 올리브유를 사용하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쌀과 올리브유의 관계가 풍미를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요.
서울 서초구 ‘사랑의 교회’ 뒷골목에 있는 ‘살롱드누아’는 스페인 음식과 멕시코 음식을 주로 하는 작은 와인 레스토랑입니다. 직접 요리하는 김자영 대표는 신문사 편집기자 출신으로 와인과 음식에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습니다. 질 좋은 재료를 엄선해 그때그때 만드는 이 집 음식은 다 맛있지만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먹물 파에야를 추천합니다.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중세 플랑드르 지방의 태피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세심하고 조밀한 구성인데 맛도 딱 이런 느낌입니다. 올리브유는 유기농 재배하고 손으로 수확하는 안달루시아산(産) 최상급 엑스트라버진만 사용합니다. 쌀과 올리브유 외에 마늘 허브 새우 홍합 바지락 오징어와 오징어 먹물을 넣고 약불에서 뭉근하게 끓여줍니다. 파에야는 알덴테(중간 정도로 익혀 씹는 맛이 나도록 요리)로 먹는 리소토와 달리 쌀을 충분히 익혀야 합니다. 살롱드누아의 파에야는 쌀을 부드럽게 익혀 소화도 잘됩니다.
비빔밥이든 볶음밥이든 하이라이트는 누룽지! 주인장이 쌀 한 톨까지 정성껏 긁어 내주는 누룽지를 꼭 챙겨 드세요. 와인과 함께 드신다면 화이트는 짭짤한 느낌이 잘 살아있는 피노블랑, 레드를 선호하신다면 타닌이 많지 않은 가르나차 품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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