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대신 구독권… 심지어 묵은 쌀 주는 경우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1일 03시 00분


계간지 ‘문학과사회 하이픈’ 문예지의 청탁시스템 비판
“원고청탁 공과 사 구별않고 문인결혼식 등서 즉흥적 이뤄져
원고료 주먹구구식으로 책정… 떠밀려 사인하는 관행 바꿔야”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권이나 문예지를 주거나 씻어도 씻어도 검은 물이 나와 먹어도 되나 싶은 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성미 시인이 최근 문학계간지 ‘문학과사회 하이픈’(문학과지성사) 여름호(사진)에 기고한 글 ‘청탁서의 안과 밖, 청탁서와 문예지 제도’의 일부다. ‘문학과사회 하이픈’ 여름호에서는 문예지의 청탁 시스템과 원고료 책정 방식, 작가와의 계약 관행 등 지금까지 적나라하게 말하기 어려웠던 계약 이슈에 대해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글을 실었다.

이 시인은 이 글에서 등단 이후 작가들이 첫 단행본을 내기 전까지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문예지 청탁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한국 문단에서 문예지는 신인에게 등단 기회를 제공하는 데다 단행본 출간의 바탕이 되는 단편소설을 게재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인은 청탁서를 보내는 절차부터 원고료 책정과 지급 방식, 전자 출판과 관련한 계약 등이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원고 청탁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고 출판사 송년회, 문인 결혼식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학시장이 어렵다면서도 해마다 계간지가 늘어나는 구조도 지적했다. 출판사가 문예지를 출판사의 단행본 홍보, 등단 장사, 자비 출판 시장 유지를 위해 이용하고 정작 작가에게는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작가가 의사를 표현할 장치가 보장돼 있지 않고 업무에 공적 성격이 부족하다”고 썼다. 합리적 청탁 절차를 마련하고 공정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며 기형적으로 운영하는 문예지는 퇴출시키고 공정한 창작 환경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조우리 씨 역시 ‘갑의 값’이란 글에서 작가들이 계약서를 제대로 검토할 절차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관행에 떠밀려 사인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값을 흥정하는 것에 대한 민망함, ‘설마’ 하는 생각에 주저하기보단 작가들이 먼저 계약 조건을 제안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 씨는 “알아보고 따져보고 살펴보는 일이 더 나은 계약서로 돌아올 거라고 믿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학시장#문학과사회 하이픈#이성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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