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죠. 세계와 음악계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지금, 이 아름다운 유산의 가치를 돌아보기 좋은 장소가 ‘역사를 담은 건축물’이라고 생각됐습니다.”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 바이올린계 신진 세력의 맨 앞줄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5)이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곡 전곡 연주를 펼친다. 다음 달 1일 오후 7시 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1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
각각 역사와 영성(靈性)이라는 독특한 의미와 분위기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어서 더욱 주목되는 이벤트다.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바이올린 음악의 ‘구약성서’라면, 이 작품들에서 영향 받은 외젠 이자이(1858∼1931)의 무반주 소나타는 ‘신약성서’로 불려왔다.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임지영은 두 작곡가의 무반주 소나타가 ‘구조적으로 오차 없이 지은 건축물’ 같다고 말했다.
“보통은 대가(大家)나 노장 연주가들이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펼쳐놓는 레퍼토리죠.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아예 지금 이 큰 레퍼토리를 시작하자.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해 보자.’ 그렇게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연초 국내 연주를 마친 뒤 독일에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는데 2월 유럽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발이 묶였다. 이 큰 레퍼토리에 투자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연습 초기엔 후회도 들었다.
“그야말로 ‘음표가 많은’ 작품들이에요. 활 속도, 비브라토, 음악적 스타일 연구 등 공부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평소 한 페이지씩 연습해 나가던 스타일을 버리고 일정표부터 짰다. 파고들면서 매일 뭔가 ‘발견’하는 환희가 찾아왔다.
“특히 이자이의 곡은 낭만주의 비르투오소(기술적 연주 거장) 스타일을 담고 있기 때문에 화려하게, 선율 위주로만 연주하기 쉽죠.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화음의 안쪽 성부가 움직이는 수학적 패턴 같은 비밀들이 느껴져요. ‘이런 걸 알아냈다. 이걸 들려줘야 해.’ 매일 느껴요. 노다지를 발견한 느낌이죠.”
1일에는 바흐 소나타 1번, 파르티타 1, 3번, 이자이 소나타 1, 4, 6번, 11일에는 바흐 소나타 2, 3번, 파르티타 2번, 이자이 소나타 2, 3, 5번을 들려준다. 그는 두 작곡가의 무반주 작품이 구조적으로 비슷해서 비교하며 번갈아 연주할 때 매우 흥미롭고 유익할 걸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는 매일 연습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제는 연습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져 영상을 올릴 시간을 내기 힘들어졌다. “실제 완성된 연주와 달리 연습이란 아름다운 작업이 아니죠. 피곤과 실수가 낱낱이 드러나요. 하지만 새벽에 제가 올린 1분짜리 영상을 보고 ‘하루의 노곤함을 잊었다’는 반응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이게 음악이 주는 힘이구나, 음악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8월 롯데콘서트홀이 주최하는 ‘클래식 레볼루션’에 참여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3중 협주곡을 협연한다. 11월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졸라와 비발디의 ‘사계’를 함께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사용 가능한 전 좌석의 25∼50%만 오픈한다.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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