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아이돌' TV-대형 콘서트장에선 우리를 볼 수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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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기획자 주석찬, ‘소공녀 프로젝트’ 리더 반설희, 프로듀서 한동희, 문화연구자 규이.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왼쪽부터 기획자 주석찬, ‘소공녀 프로젝트’ 리더 반설희, 프로듀서 한동희, 문화연구자 규이.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소공녀 프로젝트’ ‘네키루’ ‘소하’ ‘라쿠’….

아이돌 그룹인데 TV에선 못 보고 서울 마포구 라이브 클럽에 가야 볼 수 있다. 큰 방송국, 대형 경기장, 수십만 관중과는 거리가 멀다. 활동 방식, 규모, 영역이 인디 록 밴드와 흡사하다. 이른바 한국형 ‘지하 아이돌’이다.

일본의 독특한 서브컬처로 인식되던 지하 아이돌이 한국에서도 싹트고 있다. 일본문화를 동경하거나 흉내 내던 수준에서 벗어나 최근 한국어 자작곡도 잇따라 제작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 21일에만도 지하 아이돌 공연과 행사가 신촌긱라이브하우스 등 마포 일대에서 열린다. 작지만 새로운 음악계가 우리 곁에서 개화하고 있다.

지하 아이돌은 당초 도쿄 아키하바라, 신주쿠 등지의 지하 라이브 클럽에서 소규모 팬을 모집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한국형 지하 아이돌의 시작도 ‘팬심’이었다. 팬 가운데 ‘직접 해보자’고 나서는 이들이 생겨났다. 현재 ‘아이돌 아레나’ 등 한국 지하 아이돌 합동 공연이 매달 여럿 열린다.

소공녀 프로젝트의 리더 반설희 씨(20)는 케이팝 아이돌 출신이다. 반 씨는 “케이팝에서 아이돌은 예쁘고 멋지고 특별한 아이들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고, ‘7년 계약’같이 소속사 시스템에 묶여 한 번뿐인 청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구조이기도 하다”면서 “지하 아이돌은 원하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꿈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소공녀 프로젝트를 만들고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한 ‘나비춤’(3월), ‘잠깐만요 신데렐라’(4월)로 데뷔했다.

팬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분위기도 지하 아이돌의 특징이다. 지난해 결성한 네키루의 멤버 냐류(예명·20)는 “케이팝 아이돌은 음악방송에 나와 정해진 안무와 노래만 하지만 지하 아이돌은 팬들과 즉흥적으로 교감하면서 현장의 재미를 추구한다”고 했다.

지하 아이돌은 인디 밴드와 상생하는 구조다. 20일 마포구 프리즘홀에서 열리는 ‘레지스탕스! 메탈 vs 아이돌’ 공연에는 지하 아이돌과 메탈, 각 3개 팀이 함께 출연한다. 네키루의 프로듀서 겸 작사가인, 록 밴드 ‘보이드’의 한동희 씨(32)는 “좋아하는 일본 록 밴드가 해체 뒤 지하 아이돌 프로듀스에 나서는 것을 보며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은 일본 쪽에서 먼저 한국어 작사 요청이 올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신촌긱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한국 지하 아이돌 공연(위 사진)과 올해 데뷔한 한국 지하 아이돌 ‘소공녀 프로젝트’. 토와매니지먼트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신촌긱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한국 지하 아이돌 공연(위 사진)과 올해 데뷔한 한국 지하 아이돌 ‘소공녀 프로젝트’. 토와매니지먼트 제공
지하 아이돌 기획자인 주석찬 씨(32)도 “(지하 아이돌을 포함한) 일본 아이돌 산업은 최근 급성장해 매출에서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와 맞먹을 정도”라며 “일본시장의 장점인 접근성과 지속성을 한국적 문화와 접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일본은 여성 지하 아이돌만 1만 명을 헤아릴 정도지만 한국에는 좁은 의미의 지하 아이돌은 7, 8개 팀, 넓은 의미로는 30∼40개 팀이 활약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공연 뒤 팬 미팅을 뜻하는 ‘특전회’ ‘오프회’를 진행하느냐로 구분한다. 일각에서 ‘왜색 문화’라는 시선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공연마다 30∼50명의 관객이 드는데 응원 구호 역시 아직은 일본 것에 한국 멤버 이름을 섞어 외치는 형편이다. 멤버와 팬이 공연 뒤 즉석사진을 찍는 ‘체키’도 일본식 문화다.

지하 아이돌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최근 1년간 도쿄의 지하 아이돌 현장을 취재한 문화연구가 규이(예명·29)는 “성 착취적 요소, 신변 위험 문제 등 어두운 부분도 현지에서 지적받는다. 한국형 지하 아이돌도 향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도쿄에 사는 이진석 일본문화평론가(‘오타쿠 진화론’ 저자)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한국적 모델을 개발해 보는 것도 좋겠다”면서 “지하 아이돌을 통해 라이브 클럽이 다시 활성화되면 인디 밴드도 숨통이 트이므로 대안 음악계의 상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지하 아이돌#소공녀 프로젝트#라이브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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