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흔히 ‘건물 짓는 일’로만 여겨진다. 하지만 2050여 년 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저서 ‘건축서’에서 “그림과 글, 기하학, 수학, 물리학, 철학, 역사, 음악, 의학, 법학, 천문학에 대한 소양을 갖춘 이가 건축가”라고 밝혔다.
건축사무소 BARE의 전진홍 최윤희 소장은 “공간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이가 건축가”라는 비트루비우스의 정의를 실증하는 이들이다. 2014년 설립한 BARE는 건물 짓기가 아닌 건축 전시, 파빌리온 작업, 도시공간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이 품은 방대한 역할과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무소 설립 초기에 상업적 공간 작업 의뢰가 꽤 들어왔다. 우리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 정하지 않은 채 외부 요구에 따라 일해도 괜찮을지 고민이 됐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지금 아니면 실행하기 어려울 일부터 하기로 했다.”(전)
두 사람이 2005년 영국 건축학교 AA스쿨에서 함께 작업한 목재 교각 설치 프로젝트가 지향점을 찾는 실마리가 됐다. 그럴싸한 디자인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벌목한 자재를 다듬어 시공하고 전 과정에 대한 연구 자료를 전시한 작업.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생의 주기’를 돌아보는 경험이 됐다.
“건축가는 대개 건물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한다. 수명을 다한 건물을 어떻게 사라지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은 자기 몫이 아니라 여긴다. 우리는 건축의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떻게 건물의 생애를 마치게 할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재활용해 폐기물을 줄일 수 있을지, 지을 때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최)
2018년 이탈리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에 선보인 ‘꿈 세포’는 직물 구조체를 접어서 들고 다니다가 펼쳐내 주어진 공간에 맞춰 적절히 변형시켜 적용할 수 있는 공간 설치 프로젝트다.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공개작인 ‘루핑 시티’에서는 서울 세운상가의 수공업 부산물을 수거하는 로봇 운용 시스템을 제안하고 폐기물 재질에 따른 분류 수집이 가능한 로봇을 제작했다. 2014년 ‘도킹 시티’를 통해서는 서울 이태원의 좁고 가파른 샛길을 이동할 수 있는 지역친화형 개인이동수단을 만들어 보였다.
이들이 최근 서울식물원에서 작업 중인 파빌리온의 재료는 주변 땅에서 얻은 흙이다. 해체된 후 땅으로 돌아가는 건물, 재활용이 용이한 구조물, 부분적 교체와 변형이 가능한 공간을 조직하는 방법을 꾸준히 구체화하고 있는 것. 전 소장은 “언젠가 자연히 우리가 추구하는 건축의 가치관을 온전히 반영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는 대체로 생산자임을 자부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엄청난 폐기물을 자꾸 지구에 떠안기는 파괴자로 볼 거다. 현대건축은 오랫동안 건물의 멋진 형태, 공간의 효율적 활용에만 열중했다. 우리는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싶었다.”
두 사람은 명함에 사무소명 BARE(Bureau of Architecture, Research & Environment)의 한글 표기를 ‘바래’로 해놓았다. 최 소장은 “사람들의 수많은 ‘바람’을 잘 조율해내는 건축을 구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로봇이나 이동장비를 제작할 때 모든 부속은 일일이 적합한 기술자를 찾아내 의뢰한다. 다양한 분야의 결과물을 통합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이다. 규모만 키우면, 건물 짓는 작업과 똑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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