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풍부한 문학 소년이 겪은 6·25전쟁은 영혼에 어떤 자취를 남겼을까. 우정을 나눈 친구와 선후배들이 전란 속에 목숨을 잃던 혼란의 시기가 끝나자마자 ‘너는 어느 쪽이냐’ 묻는 세상이 찾아온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원로 연극연출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저자가 그가 살아낸 야만의 시대를 자전적 소설로 풀어냈다. 1960년대 유학을 다녀와서도 동백림 사건을 피했고 남파 간첩이었던 친구는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행운’에 대해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위장된 회색분자라서 살아남았다”고 토로한다. 마지막 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빚졌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반도의 평화’ 같은 거창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하게 희생된 친구들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곳곳에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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