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를 국보로,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元)나라 법전 ‘지정조격 권1~12, 23~34’와 ‘장용영 본영 도형 일괄’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는 부산 범어사 소장본으로 총 1책이며, 전체 5권 중 권4~5만 남아 있다. 범어사 초대 주지를 지낸 오성월(1865~1943)의 옛 소장본으로 1907년경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동일판본으로 지정된 국보 2건(국보 제306호, 국보 제306-2호)과 비교했을 때 범어사 소장본은 완질(完帙)은 아니다. 그러나 1394년 처음 판각된 후 인출(印出) 시기가 가장 빠른 자료로 서지학적 의미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특히 기존 지정본에서 빠진 제28∼30장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자, 1512년(중종 7년) 간행본의 오탈자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삼국유사 판본에 대한 교감(校勘)과 원판 복원을 위한 자료로서 역사·학술적인 중요성이 크다.
또한 범어사 소장본은 서체, 규격, 행간 등에 있어 후대에 간행된 1512년 간행된 판본과 밀접한 양상을 보여 조선시대부터 판본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인식됐다. 단군신화를 비롯해 향찰(신라식 음운 표기방식)로 쓴 향가 14수가 수록돼 있어 우리나라 고대 언어 연구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지정조격 권1~12, 23~34’는 비록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현존하는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 손씨 문중에 600년 넘게 전래돼 온 문적이다.
‘지정조격’은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원나라 순제 6년)에 간행된 원나라 최후의 법전으로, 서명의 뜻은 지정 연간(1341~1367)에 법률 조목의 일종인 ‘조격’(條格)을 모았다는 의미이다.
원나라는 1323년, 1346년 두 차례에 걸쳐 법전을 편찬했지만 명나라 초기에 이미 중국에서는 원본을 찾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이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나 2003년 우리나라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조사 연구진이 발견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지정조격’은 고려 말에 전래돼 우리나라 법제사와 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 말까지 형사법 등의 기본법제로 채택됐고 조선에서는 ‘경국대전’(조선의 기본법전)반포 이전까지 중국의 법률과 외교, 문화 제도를 연구하는데 주요 참고서로 활용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유물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알려진 원나라 법전이라는 희소성, 고려와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법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와 세계문화사에서 탁월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장용영은 도성 안에 본영을, 수원화성에 외영을 두고 운영됐기 때문에 이 자료는 도성 안(지금의 서울 종로 4가 이현궁 터 추정)에 설치된 장용영 본영의 현황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도형은 장용영의 전반적인 현황과 관청의 증개축 변화를 기록해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축적에 기초한 평면도와 정교한 필치로 건축물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과학적인 측량이 이뤄지지 않던 시기에 축적과 지형지세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와 거의 유사한 대지의 형태를 표현했으며, 채색도와 간가도를 한 벌로 작성해 보는 이로 하여금 건축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후대에 확장된 건물을 다시 그려 장용영이 확장돼 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없어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장용영의 정확한 규모와 세부 건물의 배치와 기능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정간 구획의 대형 평면도와 이와 합치하는 채색건물도가 함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이자 유일한 도형이다.
문화재청은 해당 유물 3건에 대해 30일간 예고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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