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를 만들지 않는 세력균형이 국가 간 관계의 철칙으로 자리 잡아가던 근대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은 공포 그 자체였다. 16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칼리프를 자처한 지도자들이 빈을 세 차례 포위하는 원정(遠征)을 감행했을 때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친 것도 세력균형의 파탄은 곧 유럽의 붕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런 연유 등으로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은 오스만 제국을 단순히 객체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발칸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국가들에 의해 맥없이 해체된 오스만 제국 말년의 실상은 이런 관점을 더욱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동로마 제국이 종언을 고한 이후 서구 열강의 지구적 식민지 확장 이전까지 400년 넘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영토를 보유했던 오스만 제국은 그런 역사적 ‘박대’를 받을 대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스만 제국을 주체적 행위자 위치에 놓고 바라보며 이 제국이 어떻게 6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는지 개괄한 이 책은 오스만 제국뿐만 아니라 이슬람 역사까지 객관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스만 제국 600년의 번영과 쇠퇴를 왕위계승, 권력구조, 통치이념이라는 3가지 틀로 본다. 왕권 다툼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계승자 이외의 왕자를 죽이는 ‘형제살해’ 방식,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앙집권과 분권을 오간 권력구조, 그리고 비(非)무슬림의 신앙과 가치에 관대한 이슬람 통치이념이 조화를 이루며 제국을 지탱했다는 것이다.
특히 노예의 아들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고, 기독교도 소년들을 등용해 술탄을 수행하게 하는 데브쉬르메와 이들이 커서 대(大)재상 등 요직에서 국정 운영을 맡는 카프쿨루 제도를 두며, 기독교도 노예들로 이스탄불 중심의 군사 세력인 예니체리 군단을 구성하는 등 이질적인 것의 혼융이야말로 오스만 제국 역사의 백미로 보인다. 19세기 들어 단일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체제의 등장을 오스만 제국이 견뎌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600년 역사를 350쪽 이내에 소화하기란 버거운 작업인데 일본 연구자 특유의 꼼꼼함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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