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여다본 데 이어 또 베토벤입니다. 그래야만 할까요? 그래야만 했습니다.
이달 22일부터 8월 8일까지 제17회 평창대관령음악제가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를 주제로 열립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현악4중주 16번 F장조 악보에 적어넣은 문구입니다. 이에 앞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18, 19일 이 곡의 오케스트라 버전을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의 지휘로 연주합니다.
이 곡 4악장 악보에는 실제 연주 악보 위에 간단한 음표 동기와 짧은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베토벤 본인의 글씨로 ‘어렵게 내린 결심’이라는 말과 함께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이라는 말을 써 넣었습니다. 베토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지금까지 여러 해석이 나왔습니다. 베토벤의 비서 신들러는 “베토벤이 ‘가정부 주급을 올려줘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 번 말씀드렸듯이 신들러는 거짓말을 자주 했으니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겠죠.
비슷한 톤의 코믹한 해석으로는, 베토벤 친구였던 뎀브셔라는 사람이 “악보 좀 주게”했더니 베토벤이 “돈을 내야지”해서 뎀브셔가 “그래야만 하나?”하고 버텼더니, 베토벤이 “그래야만 한다. 지갑을 열어라”라며 깔깔대면서 이 말을 적어 넣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얘기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인용돼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애기로는 베토벤이 세 개 악장을 쓴 상태에서 출판업자 슐레징어가 “빠른 마지막 악장을 써야지”라고 재촉하니까 베토벤이 “그래야만 하나?”하다가 “그래야만 하겠다”라고 결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베토벤은 그런 가벼운 생각이 아니라 창작 이념의 근본적이고 중대한 변화를 모색하며 그런 고민을 표현한 것 아닐까”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런데 당시 베토벤은 중대한 작곡 철학이나 기법의 변화를 생각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현악4중주곡을 쓴 다음해 세상을 떠났죠.
자네티 음악감독은 이 말에 대해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게는 ‘그것’이 음악이다. 음악이어야 한다!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예전에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영혼에 너무나 중요한 일들을 다시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손열음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도 “2020년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 문구의 무게감이 우리와 맞닿는다고 생각해 올해 음악제의 주제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를 덧붙이면, 베토벤이 이 ‘수수께끼’ 문구를 적고 한 세기 뒤에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관현악곡을 썼습니다. 그는 “곡 전체를 관통하는 수수께끼의 주제가 있다”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설’을 제안합니다. ‘수수께끼 변주곡’의 주제 첫 부분 음표들을 아래위로 뒤집는 ‘전위(轉位·inversion)’ 기법을 사용하면 베토벤의 ‘그래야만 한다’의 동기와 같습니다. 엘가는 100년 전 대작곡가의 수수께끼 같은 문구에 대해 자신의 ‘수수께끼’로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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