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 10주기를 맞아 국제한인문학회(회장 박형준)가 주최하는 제20회 전국학술대회가 1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기아자동차 BEAT360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최하림 시인의 고향인 신안군의 박우량 군수와 최하림 시인의 아내 장숙희 여사 및 유족, 그리고 그의 시를 사랑하는 제자 및 후배시인과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다채로운 산문과 논문 발표로 이루어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의 시세계 및 문화 평론가로서의 면모, 제자 및 후배 문인들의 회고를 통해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전개돼온 최하림 시인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학술대회는 산문 발표와 논문 발표로 진행됐다. 산문발표에는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후배 시인들인 김선태, 임동확과 제자 시인들인 이승희, 이병률, 이향희, 이원, 그리고 유족인 따님 최승린 소설가가 참여하여 최하림 시인을 추모했다.
최하림은 한국시사에서 순수와 참여 사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중용의 미학, 풍경의 시학을 펼쳐냈고, 시작 초기에는 고향인 신안군과 목포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을 펼치는 등 문화기획자로서도 탁월한 활동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이후에도 ‘산문시대’ 동인, 미술 평론 및 시론가로서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최하림 시인은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1984년 9월부터 1987년까지 약 4년간 출강을 하였는데, 그때 만난 제자들이 장석남, 이기인, 이승희, 이병률, 이향희, 이원 등이다. 최하림 시인의 서울예대 첫 제자인 장석남은 “내 생애에서 가장 큰 그늘”이었던 선생님이 ‘참 나’를 깨우쳐 준 과정을 마당가 한 모퉁이에 심은 배추꽃의 피어남을 통해 담백하면서 절절하게 표현했다. 이기인은 선생님께서 새로 이사 간 집에 마당 울타리로 삼기 위해 측백나무 40그루를 사러 가던 길에 동행하면서 느낀 소회를 통해 삶의 자양분으로 시가 일어서고 “고통을 행복으로 만드는 사람의 가련한 애씀”이 시라는 것을 전했다.
이승희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마음”으로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취하시던 시인을 회고했다. 이병률은 “엄격했던 하지만 따뜻했던” 선생님의 시 수업 시간과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동인을 만들어 활동하던 시기를 회상했다.
이원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두 달 전인 2010년 2월 18일에 북한강변에서 열렸던 ‘최하림 시 전집’ 출간 기념회 풍경과 “시인의 초상”을 갖고 계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전달했다. 방송드라마 작가인 이향희는 “글이 돈이 된다는 것은 꽃과 같은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격려를 통해 방송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사연과 수십 명의 제자들이 그렇게 남몰래 선생님께 선물을 받았음을 들려주었다. 제자 시인들은 최하림 시인의 제자로서 그의 문학세계에 젖줄을 댄 나이테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말씀 덕분에 간신히 삶을 배우고 시를 쓸 수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나이테 같은 것이다. 나무 안에서 생겨나고 있는 나이테. 그 느낌에 가 닿으면, 선생님의 시를 읽는 순간처럼, ”넉넉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허기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저녁 시간’)은 둥금이 내게서 감지되고는 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선생님은 애써 구부리시는 예가 없었다. 당신에게 찾아온 병에 대해서도 창 밖 소나무를 보듯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시인의 초상’을 갖고 계셨다.” (이원, ‘선생님은 거기 계시다’ 부분)
후배 문인들인 김선태, 임동확의 글에서는 선배 시인으로서 후배 문인들을 대하던 최하림의 따뜻한 풍모와 함께 개인과 시대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생님의 시 세계에 대한 체험적인 회고담을 엿볼 수 있다. 김선태는 최하림 선생님이 문학 청년 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 중반에서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목포 문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울러 고향 후배 문인으로서 최하림 기념 사업을 향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그 대안에 대해 진실하고 명료한 방향성을 갖고 제안했다. 임동확은 문학은 일종의 무의식과 같으며 억압이 지나친 시대를 만나면 복류(伏流)하다가 분출할 기회를 갖는 물과 같다는 최하림 시인의 말을 들려준다. 임동확은 선생님의 ‘순수주의’가 지닌 내면적인 ‘침묵의 말’, ‘정적의 소리’가 또한 공동체의 운명과 함께 하는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역사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짚어준다.
유족을 대표하여 아버지 최하림 선생님을 회고하는 글을 준 따님 최승린 작가의 글도 가슴을 울렸다. “시인 최하림이 아닌, 내 아버지 최하림에 대한 나만의 그림”을 담은 따님의 글은 선생님의 시가 “기도”였음을,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날아올라 하늘에 닿는 것”이라는 것을 따뜻하게 전해준다.
이어진 논문 발표에서는 최하림 시인의 작품 세계를 짚어보는 총 7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박시영(광주 선명학교 교사), 김익균(동국대 강사), 박옥순(한국교통대 강사), 박슬기(한림대 교수), 김춘식(동국대교수), 최현식(인하대 교수), 손현숙(고려대 강사) 등 총 7명의 학자들이 최하림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연대기, 시론 및 역사 의식, 그리고 후기 시에서 보이는 바라봄과 내면 의식, 물 이미지 등 그의 시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논문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 최하림 시인은 내면적으로 윤동주와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김수영과 닮았다. 최하림의 시와 글에는 윤동주처럼 작은 것에도 부끄러워하고 물에 비친 자신에게서 세상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또한 시론 활동이나 우리 미술평을 통해 사회와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지닌 김수영 같은 지사적인 면모와 아울러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사랑을 담아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하림의 10주기인 4월 말에 개최하려던 학술대회가 미뤄졌다가 개최됐다. 한편 국제한인문학회는 최하림 시인의 기일에 맞춰 지난 4월에 선생님을 추모하는 후배 문인들과 제자 문인들이 엮은 소산문집 ‘나는 뭐라 말해야 할까요?’를 발간한 바 있으며,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내년에 기념논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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