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물건이든 책갈피로 쓴다’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한다’ ‘문장부호에 집착한다’ ‘국민 소설이 될 작품을 구상 중이다’ ‘도서관의 단골 연체료 미납자다’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아이들의 책을 훔쳐 읽기도 한다’ ‘가끔 허구와 현실을 혼동한다’….
만약 이런 특징을 몇 가지 갖고 있다면 당신도 이 책이 진단하는 ‘책덕후(책+오타쿠)’다. 이 책은 미국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만화를 연재하는 저자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그린 카툰 에세이집이다. 맥주도, 복권도 아니라 다름 아닌 책에 중독된 사람들, 도서관과 동네서점, 헌책방 곳곳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쓰레기통에서까지 책을 주워오는 책덕후들 이야기.
책덕후들은 책장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을 즐긴다. 파티에 초대 받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 그 집 서재를 둘러본다. ‘멋 부렸지만 얄팍한 사람’ ‘고등학교 수준에 머문 사람’ ‘정리벽이 있는 사람’ ‘진정한 독서가!’ 등등. 책장만 봐도 상대가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평가를 받기 싫다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 책장을 설치하거나, ‘프루스트가 더 있어야겠네요’ 식으로 조언해주는 책장 컨설팅을 받거나, 책덕후는 파티에 절대 초대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책덕후들의 책장이야말로 어떤지 한번 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 책장만 보고 날 판단하진 말아줘.”
버스 안에서도, 요가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실현 불가능한 독서 목표를 늘 세우며, 대단한 글을 쓰고 말겠다는 야망을 포기하지 않는 책덕후들. 이들은 글이 긴 두꺼운 책도, 글이 짧고 얇은 책도 좋아하고, 글이 없는 그림책도 좋아한다. 책은 새로운 세상의 관문이자 새로운 지식에 이르는 발판일 뿐 아니라 문을 괼 때 쓰는 받침대나 파리채의 유용한 대용품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빙고’(하루키 작품의 특징으로 구성된 빙고게임), ‘강박증 환자를 위한 책 정리법’ 등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키득거리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귀여운 그림체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이어진다. 작가의 본업이 치과의사라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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