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미술관은 고대 그리스의 ‘무세이온(Museion)’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 ‘뮤즈(Muse)’를 모시던 사당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봉헌했을 테고 여신 뮤즈의 이름에 걸맞은 멋진 공연예술도 이곳에서 열렸다. 미술관에 방문한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일이다.
미술관 앞에 선 여행자의 모습은 극명하게 두 가지로 갈린다. “여행 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니 온 거지 뭐 딱히 재미도 없네”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거의 가이드의 설명은 듣지 않고 미술관 투어를 순식간에 끝내버린다. 보다 꼼꼼한 감상을 위해 부여된 자유시간은 이들에게는 지친 몸을 쉬는 시간일 뿐이다.
반대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하나라도 더 보고 마음을 열고 감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년 여성분들이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이는데 그 분들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아, 저분은 지금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여고생의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미술관의 예술 작품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잘 알려주는 증거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는 현상이 종종 인용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예술작품을 본 후 ‘아름다움의 절정과 희열을 느껴 성당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했던 것’에서 유래한 현상이다.
스탕달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 ‘유대인 신부’를 보고 “이 미술관에서 2주만 더 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면 내 10년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실제로 마주한 관람객들이 몇 명씩 기절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된 다비드 상을 보고 스탕달 신드롬을 겪은 사례들도 꽤 많이 보고되고 있다.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이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런 감동을 마주하러 가는 길을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날 수는 없다. 남들보다 두 배로 즐겁고 의미 있는 미술관 감상을 위해 나름의 미술관 감상법을 소개한다. 이 지겨운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가장 먼저 달려갈 세계의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제대로 된 감동을 느끼기 위해 워밍업을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1. ‘나만의 작품’을 골라놓자
바티칸 미술관미술관 방문이 재미없고 지루한 것은 작품을 대충대충 보기 때문이다. 수만 가지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니 하나라도 더 봐야 본전이라 생각하는 것. 예술가가 수십 년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무심한 관람객은 딱 3초 정도 보고 지나간다. 이래서는 어떤 감동도 느낌도 받을 수 없다.
방문이 예정된 미술관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어떤 작품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 작품을 하나씩 눈으로 좇다 보면 자신과 어쩐지 궁합이 맞는, 그냥 끌리는 작품이 하나쯤 나오는데 그럼 이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 작품 하나 만큼은 거기에 얽힌 이야기, 역사, 다른 이의 감상 평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감상을 한다.
2. 작은 노트를 준비하자
북경 798예술구 갤러리위에 언급한 ‘나만의 작품’의 감상을 도와주는 노트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미술관에 입장할 때는 딱 그 노트 하나만 가져가면 된다. 실제로 필자는 언젠가 출장길에서 손바닥만 한 노트를 펼치며 작품을 감상하는 중년 여성 관광객을 만난 적이 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3. 구글 아트 프로젝트
발리의 전통시장 미술품구글(Google)의 사회문화사업으로 손꼽히는 프로젝트. 2011년 시작 당시 이름이 ‘구글 아트 프로젝트’인데 당시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은 구글의 이런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세계의 거의 모든 유명 회화 작품을 눈앞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고 가상 미술관 투어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구글 아트 앤드 컬처 Google Arts & Culture’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는데 단연코 모든 이의 상상을 뛰어넘는 최고의 온라인 미술관이다.
4. SNS를 활용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24시간 365일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는 수첩이면서 남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게시판이다. 나만의 작품을 정하고 그 작품의 유래, 창작 과정, 감상 포인트까지 시리즈로 정리해 본인 SNS에 차곡차곡 쌓아둔다면 개인으로서도 훌륭한 온라인 미술관이 하나 생기는 셈이 된다.
미술관을 감상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의 감상이다. 예술작품의 감상에는 솔직한 감정 이외에는 다른 것이 들어설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작품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한다거나 얕은 지식으로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남에게 들은 소리만으로 평론가 흉내를 내는 것이야말로 금기다.
평론이 직업이 아니라면 우리 여행자들이 굳이 그런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보고 느껴야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 보고 평가하다 보면 어느덧 ‘내 취향’이라는 것도 생겨난다. 그럼 그 다음 해외여행은 그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찾아 떠나는 아트투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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