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편집장(사진)은 ‘거대도시 서울 철도’(전현우 지음·워크룸 프레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철도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기계비평서로 기획했으나 엄청난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국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아 철도가 해야 할 일까지 전망하는 550쪽의 두꺼운 책이 될지는 몰랐다.
“출간하기 전에 ‘철덕’(철도에 푹 빠진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철도 덕후’의 줄임말) 몇 분에게 보여드렸더니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일반 독자에게는 (이 책이) 벽이 좀 있어요. 하하.”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종이를 실로 꿰맨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누드사철(絲綴) 제본한 책의 표지는 요령부득의 빨간색 우하향(右下向) 사선 수십 개가 그어진 그래프다. 책을 펼치면 수백 개의 도표와 지도가 지면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전문용어 설명만 열네 쪽에 이른다. 죽 훑어보기만 해도 정보의 밀도가 대단해 설렁설렁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2017년 원고를 청탁하고 첫 번째 장(章)을 받았는데 원고지 1000장이 왔어요.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음부터 제 역할은 원고를 쳐내는 일이었어요. 철덕의 세계가 넓고도 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서론을 읽어보면 흥미가 솔솔 인다.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한국 철도망에 각종 자료를 덧입혀 철도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는지 촘촘히 설명한다.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의 철도 기술, 경영, 정책을 누비고 결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결정적인 수단이 철도라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입증해낸다. 결국 항공기와 자동차가 득세하고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는 미래 교통의 세계에서도, 철도가 여전히 그리고 더 많이 필요한지를 논증하는 책이다.
“국제에너지기구가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지구 평균 상승기온을 섭씨 2도 미만으로 하려면 철도수송량을 늘려야 한다고 전망했는데 저자는 ‘페르미 추정’을 통해 따져봤어요. 대략 계산했더니 경부고속철도 700개나 서울지하철 4호선 2500개 짓는 정도라는 거죠. 이를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철도 개발을 지원하자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죠.”
박 편집장이 생각하는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철도 현업 종사자, 정책입안자, 연구자들이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이들보다 덜 중요한 독자라고는 보지 않는다. 도시철도 노선을 신설한다고 하면 집값 오를까만 생각하지 말고 철도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 가면 선거철마다 개발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인 등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 뭐지’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2장까지는 한번 마음을 열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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