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심리유형별 5색 제주 체험
5만년 전 분화구, 호수에서 들판으로… 치유의 숲길에선 느긋한 맨발 트레킹
울퉁불퉁 목장길 쿵쿵 험로운전 짜릿, 서귀포 올레시장 제주 간식거리 즐비
《제주의 풍경은 색다르다. 이국적인 분위기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이런 제주에서 색다르게 걷고,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MBTI(심리유형검사)에 따라 5색 제주 체험을 제안한다. 》
○ 하논 분화구: INFP INTP(상상력이 풍부한 여행자)
하논 분화구(서귀포시 일주동로 8823)는 상상력의 나래가 펼쳐지는 풍경을 자랑한다. 하논이라는 이름은 많다는 뜻의 제주어 ‘하다’와 ‘논’이 결합된 것이다. 하논 분화구는 제주 올레길 7-1 구간이기도 하다. 이 구간은 월드컵경기장∼엉또폭포∼고근산∼서호마을∼하논 분화구∼외돌개를 걷는다. 분화구 직경은 무려 1.2km. 분화구 위에 위치한 방문자센터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크기의 분화구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학계 전문가들은 5만여 년 전 분화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약 500년 전 지역민들이 분화구 한쪽을 허물고 물을 뺀 뒤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도 제주 유일의 벼농사 지역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쌀은 대부분 탁주 제조 등에 쓰인다.
하논 분화구 걷기는 방문자센터가 출발점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주위 지대보다 낮고 사방이 막혀 있어 분화구라는 사실이 그제야 피부로 와닿는다. 분화구 분위기는 사계절마다 변한다. 봄이면 자운영이 피고 모내기가 이뤄진다. 여름에는 논과 밭이 초록빛으로 물든다. 가을엔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인 황금 들판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겨울에는 분화구 중턱에 조성된 감귤밭에 귤이 한가득 매달린 풍경이 일품이다.
분화구 안은 넓은 평지 지형에 원시림 같은 독특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에는 지하에서 물이 솟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 호수였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중턱의 감귤밭, 넓은 논, 원시림, 하천 등 우리가 아는 제주와 다른 풍경에 걷는 길은 마냥 즐겁다.
○ 물뫼힐링팜: ISTJ INTP(계획적인 다양성 추구 여행자)
제주만의 풍경을 보며 색다르게 걷고 싶다면 물뫼힐링팜(제주시 애월읍 예원로 51)에서 운영하는 트레킹을 추천한다. 반나절, 하루, 1박 2일 등의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이들 코스 가운데 인기가 많은 반나절 코스는 약 2∼3시간 동안 밭담길 또는 한라산 둘레길을 걷는다.
무작정 풍경을 보고 걷는 게 아니다. 일단 걷기 전에 혈압과 피부 표면 온도를 잰다.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풀어준다. 밭담길을 걸으며 해설사에게서 제주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밭담길은 밭 주위에 현무암 등 돌을 쌓은 담을 말한다. 제주 전역에 약 2만 km가 넘는 밭담이 있다. 밭담길을 따라 수산저수지 둑방길로 향한다. 둑방길을 걸을 땐 저수지 풍광을 즐기며 호흡하고 걷는 법을 배운다. 저수지를 따라 걷다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천연기념물 제441호로 약 400년 전 수산리 마을이 생길 때 심어졌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나무라고 믿고 보호해 왔다. 곰이 저수지 물을 마시려고 웅크려 있는 모습과 비슷해 ‘곰솔’이라고도 불린다.
곰솔 맞은편에는 야트막한 수산봉이 있다. 저수지가 보이는 중턱에서 매트를 깔고 차를 마시면서 쉬거나 명상을 하기 좋다. 저수지와 한라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산봉을 약 30분간 걸으며 해먹과 줄을 이용해 스트레칭을 한다. 체험이 모두 끝나면 제주에서 난 재료들로 정성껏 만든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냥 길을 따라 명상하며 걸었 을 뿐인데 제주가 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 서귀포 치유의 숲: ESTP ISFP(느긋하고 활발한 여행자)
제주에는 많은 숲이 있다. 걷기는 물론 사진 찍기 명소로도 인기가 많다. 서귀포 치유의 숲(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은 그중에서도 색다른 공간이다.
일단 하루 300명(주말 600명)만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최근 일부 숲에 많은 인파가 몰리며 혼잡한 분위기였다면 이곳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이 느긋하게 숲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소통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즐길 수 있고, 3∼5km 거리를 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편하게 걷고 쉬는 코스도 있다. 보통 3시간 남짓 소요된다. 한라산 남쪽 해발 500m에 위치한 치유의 숲은 입구부터 남다르다. ‘뎅기는 질 아니우다(탐방로 아님)’, ‘셋도질 허지 말게양(정문 매표소를 통해 입장하세요)’ 등 낯선 제주어 간판이 이색적인 섬을 알린다. 총 15km 길이인 숲길 이름도 독특하다. 숨비소리(해녀들이 내뱉는 숨소리), 가멍오멍(여유 있는), 벤조롱(산뜻한), 오고생이(있는 그대로) 등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총 길이 1.9km인 가멍오멍 숲길은 덱 시설을 갖춘 무장애 길 250m를 품고 있다. 무장애 길을 걸을 땐 맨발이 좋다. 잘게 조각난 나뭇조각들이 밟아도 부드럽고 쿠션 역할을 해줘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정말 숲과 하나가 된 느낌이 든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숲길 중간중간 나무벤치와 침대가 마련돼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걸을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곳곳에서 새 소리가 들려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코끝으로 짙은 나무향기를 맡으면 청량감이 느껴진다. 숨쉬는 공기가 이렇게 달콤할 수 있을까 새삼 놀라게 된다. 숲길을 걷지 않아도, 그 숲에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일부 프로그램은 중단된 상태다.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미리 문의할 필요가 있다.
○ 제라진오프로드: ENFP ESFJ(도전과 호응이 좋은 여행자)
제라진오프로드(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624-4)는 제주에서 뭔가 색다른 체험과 도전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직접 운전할 필요는 없다. 오프로드 레이싱 대회 입상 경력의 베테랑 운전사가 험로 전용 차량을 운전한다. 코스는 6.5km 길이로 원시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대부분 말이 다녔던 길을 따라 설계됐다.
오프로드는 방법일 뿐이고 목장 투어가 본질이다. 체험자는 그저 1시간 남짓 제주 목장길을 보고 듣고 느끼면 된다. 말이 다니던 길인 탓에 오르락내리락 길은 기본이다. 울퉁불퉁한 길에 진흙탕, 가시밭까지 추가된다. ‘이런 길을 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길들이 도전정신이 들게 만든다. 험한 길을 지날 땐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려 옆 사람과 몸을 부딪치기 일쑤다. 처음에는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만 자주 그러다 보니 나중엔 서로 웃기만 한다. 높은 경사에서 갑자기 내려갈 땐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수도 있다. 저절로 “악!” 소리가 나온다. 끈으로 된 손잡이를 꼭 붙잡고 균형을 유지하려다 보니 온몸의 근육이 긴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찬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 상하좌우로 재미있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짜릿한 쾌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중간 지점인 해발 305m의 언덕전망대는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날이 좋다면 함덕,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후 다시 차에 올라 신나게 달리다 보면 벵뒤못에 이른다. 웃방오름에서 흘러든 물이 연못을 이룬 곳이다. 근처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 떼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 서귀포매일올레시장: ESFP ISTJ(준비하는 맛집 여행자)
서귀포를 찾는 여행자라면 매일올레시장(서귀포시 중앙로 62길 18)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제주감귤타르트, 꽁치김밥 등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간식거리가 많다. 통닭이나 회 등을 포장해 갈 수도 있다. 제주에서 만드는 수제맥주를 파는 곳도 있어 숙소가 가깝다면 자동차를 놔두고 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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