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으로 하늘을 가리고 마스크로 호흡을 가리고 식당 앞에 도착했다. 이전에는 더 향기롭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다녔다. 식당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도전적인 일상을 시작하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좀 더 건강하고 위생적이고 믿을 만한 곳을 찾는다.
‘피양콩할마니’는 콩비지가 유명하다. 콩비지는 콩물을 빼지 않은 채로 맷돌에 고스란히 갈아내서 가마솥에 끓이는데 두유의 고소함과 비지의 보디감이 살아있다. 경기 연천산(産) 백태콩을 쓰는데 수매(收買) 증명까지 벽에 붙여 놓을 정도로 재료 수급에 공을 들인다.
연두부처럼 몽글몽글한 콩비지는 오리지널 맛도 있지만 무를 넣고 끓인 것, 김치를 넣고 끓인 것, 버섯을 넣고 끓인 버전이 있다. 나는 뒷맛이 개운하고 소화도 도와주는 무콩비지를 좋아한다. 콩의 아린 맛을 잡아주고 뜨겁게 혹은 촉촉하게 목으로 녹여 먹는 무의 맛이 사랑스럽다.
단골들이 잘 시키는 메뉴는 모듬전(모둠전)이다. 모둠전은 하나하나 맛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群舞)’ 같다. 동그랑땡 버섯전 생선전 고추전 깻잎전이 소쿠리에 담긴다. 튀김과 지짐이의 중간선을 타며 달걀은 고소하게 익었고 속살은 촉촉하니 입술을 적신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전을 먹노라니 ‘치이익 칙’ 빗소리마저 음악으로 깔린다. 양파를 큰 덩어리로 썰어 넣은 양념장이 있는데 전을 퐁당 담가도 짜지 않고 간이 좋다. 특히 버섯전은 아주 좋은 생표고를 썼다. 눈을 감고 씹으면 쫀득하니 젤리 같고 비 온 뒤의 땅 향기가 코끝을 적신다. 깻잎전은 깻잎을 반으로 접고 그 안에 다진 고기를 넣었다. 밀가루 없는 납작만두라 할까. 싱싱한 여름 고추를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야무지게 고기소를 담은 고추전은 매콤함 달콤함 아삭함 풋풋함 고소함이 고추를 무지개처럼 수놓는다.
콩비지와 모둠전에 곁들일 메뉴는 더 있다. 콩국수와 들깨수제비. 콩국수는 맷돌로 간 콩물에 소금이나 설탕 간 없이 그저 순수하다. 질 좋은 국산 콩이 지닌 올리고당 단백질 이소플라본 지방산 칼슘 등이 이런 맛을 내는구나, 알려주는 교과서다. 들깨수제비는 양식당의 크림수프를 연상케 한다. 오래 끓인 사골육수에 들깨를 곱게 갈아 부드럽고 안온하다. 밀가루 수제비 대신 조롱이쌀떡을 넣는다.
8000원 콩비지 하나를 주문해도 맛깔스러운 반찬이 5가지 나온다. 두부부침 청경채무침 배추김치 깻잎지 더덕무침 등 그날그날 다르다. 삼삼하게 무친 깻잎지가 특히 맛있고 다른 반찬 모두 ‘집밥’처럼 편안하다.
저녁에는 콩비지 백반은 되지 않고 콩비지전골만 주문할 수 있다. 30여 년 역사가 쌓인 식당. 앞으로 30년 동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우산을 써야 할 날만 있더라도 이곳만큼은 다시 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피양콩할마니=서울 강남구 삼성로81길 30, 무콩비지 8000원, 모듬전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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