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5·끝> 한국 소설가 황석영
역사 다루되 세속에 타협않고 인간적이면서 작가정신 잃지않아
초기작 ‘삼포 가는 길’을 통해 현대인의 허망-소외감 그려내
‘오래된 정원’은 탄탄한 분단 작품… 대표작 ‘장길산’의 묘사력도 탁월
《작가 황석영(77)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를 끈질기게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읽힌 것은 현실 고발만이 아니라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소설 내면에 흐르고 있는 아련한 슬픔, 외로움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왜 그에게 끌리는지 모르고 읽는다.》
작가는 한국적 정서를 배경으로 시적 서정으로 표현해 그의 소설을 전개하지만 결코 현실에서 떠나지 않는다. 서정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조리를 보여주기 위하여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현실 고발 수단은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문학 본연의 가치’다. 그의 주인공 대부분은 마지막에 난파함으로써 애련과 연민을 남긴다.
소설 ‘오래된 정원’에서 두 사람이 숨어 지내는 작은 집은 엘리시움(이상향)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현실 문제에서 결코 떠나지 않는다. 분단소설 가운데 이만큼 탄탄한 작품은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소설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대목은 있다. 한 동료가 북한으로 간 듯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북한이 정말 유토피아라는 의미를 독자에게 줄 수도 있는 위험한 안내이다. 그곳이 정말 유토피아라고 작가는 생각했을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언급한 작가가 사회주의 국가가 왜 장벽을 쌓았는지, 왜 그것이 민중에 의해 무너졌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위선자가 아닐까. 정치인과 지식인은 다르다. 정치인은 현실과 정치를, 지식인은 오직 자유와 평등과 정의라는 이념을 따를 뿐이라면 그렇다. 한국은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낡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황석영은 단연 뛰어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작품에는 역사를 다루되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고집스런 작가 정신’(박경리문학상 취지문)이 일관되게 들어 있다.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그의 문학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나타낸 작품은 초기작 ‘삼포 가는 길’일 것이다. 현대인의 상실감과 고향 상실, 유토피아를 찾았으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허망감에 빠진 현대인이며, 한국 산업화 과정의 물화와 그 과정에서 소외된 한국인이며, 또한 보편적인 현대의 세계인이다. 이런 관점은 작가의 후기 작품에까지 흐르고 있다. 다만 최신작 ‘철도원 삼대’에서는 그의 특성인 서정성이 결여돼 다큐멘터리 같다.
대표작은 ‘장길산’일 것이다. 그의 묘사력은 장편임에도 허술한 곳이 한 곳도 없다. 이런 작업을 끝까지 일관되게 한다는 것은 작가의 재주다. 그의 말대로 “한국문학이라는 탑 한 부분에 돌 하나를 끼워 넣는 작업”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황석영의 작품은 한국의 현실적인 문제를 역사적 좌표에서 직시하고 앞으로 도래할 세계, 이상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 소설가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신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2년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며 등단했다. 이후 10여 년간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등에서 일하며 행자 생활을 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 시기 체험은 1970년대 그의 문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객지’(1971년) ‘아우를 위하여’(1972년) ‘삼포 가는 길’(1973년) ‘장길산(1974년)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다루며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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