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실존 승려 조각한 희랑대사좌상 국보로 승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일 03시 00분


세로로 긴 두상, 인자한 눈빛과 잔잔한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문화재청 제공
세로로 긴 두상, 인자한 눈빛과 잔잔한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실존했던 승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해인사의 조각상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999호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를 묘사한 이 조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존했던 고승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이자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이다.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승려로,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한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왕건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조각상 가슴에는 폭 0.5cm, 길이 3.5cm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독특하다. 해인사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흔적이라고 한다. 희랑대사의 별칭이 ‘흉혈국인(胸穴國人·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흔히 고승의 가슴이나 정수리에 난 구멍은 신통력을 상징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조사에 따르면 작품은 앞면은 건칠로 만들고,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했으며 후대의 변형 없이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칠 기법은 삼베 등에 옻칠을 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 승격#해인사#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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