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사람이다!” 잠시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운 순간, 차창 앞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창문이 꽉 닫혀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마스크부터 찾아 귀에 건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보인다.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며 생긴 무의식적 변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미국 뉴욕에 살던 한국인 부부의 집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격리시설에서 병마와 싸우다 완치한 이야기는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소개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해외 상황은 덜 알려졌다.
바이러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던 뉴욕에서 해열제만으로 40일간 생존했던 한 부부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남편에게 의심증세가 나타나고 끝내 완치한 여정은 생각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됐다. 하지만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며, 글을 읽는 누군가도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재난 대비 지침서다.
3일 전화로 만난 김어제 씨는 “미국의 비싼 진료비 때문에 건강관리는 부부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지만 코로나19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펜을 들었다”고 저술 사유를 밝혔다. 저자는 귀국 후 스마트폰과 메모장에 남겨둔 기록을 조립해 5개월여의 기억을 되살렸다.
여느 해처럼 겨울을 나던 부부는 올 1월 22일, 중국 우한(武漢)의 봉쇄 소식을 접했다. 김 씨는 “바이러스는 먼 곳의 일이었다. 상황이 소설 ‘세계대전Z’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면서도 “그때부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평소보다 손을 열심히 씻었다”고 했다.
공포는 빠르게 찾아왔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퍼졌다는 보도로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유무형의 폭력이 만연했다. 그는 “폭력은 중국인, 한국인 등을 구별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남편까지 코로나19 의심증세를 호소하며 진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불안할수록 철저히 상황에 대처했다. 바이러스를 공부하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힘썼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해열제를 먹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다행히 귀국 전 극심한 고통은 사라졌고 무사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해외에서 잘살다 조급해지니 고국을 찾는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외국인이라고 진료조차 못 받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저자 부부는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이다. 남편이 마쳐야 할 학업보다 후유증 관리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김 씨는 “다수 국가가 일상을 되찾지 못한 데 비해 한국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상 비슷한 것을 영유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책의 마지막 부록 ‘셧다운에 대비하는 자세’에는 미국에서 체득한 위생 수칙, 체크리스트 등을 빼곡히 기록했다. ‘코로나 우울(블루)’과 공포의 사재기까지 이겨낸 김 씨의 경험담은 팬데믹(대유행) 시대를 사는 이들을 위한 위안이자 ‘멘털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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