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만드는 법]“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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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간…’ 펴낸 이정화 대표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책 제목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라고 하자 이정화 정은문고 대표(53·사진)의 동생이 물었단다. “고려시대 다음의 그 조선을 말하는 거야?” 조선시대에 조선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 이야기냐는 뜻이었다.

1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기자와 만난 이 대표는 “저도 일본 이와나미문고(巖波文庫) 신간 소식에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북송(北送)사업’이 뭔지 몰랐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북송사업은 1959년 2월∼1984년 7월 북한 정부와 조총련이 재일교포 약 9만3000명을 북송선에 태워 북한에 보낸 일을 말한다. 우리는 강제송환이라 불렀고 북한은 동포귀국사업이라고 했다. 1990년대 초 조총련을 탈퇴한 인사들은 북송된 이들 대부분이 참혹하게 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출간된 이 책은 유명한 보도사진작가인 하야시 노리코(林典子·37)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평양, 원산, 함흥 등지에서 북송사업으로 재일교포 남편과 함께 북에 온 일본 아내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포토 다큐멘터리’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4∼76년 저희 집에서 일하시던 일본인 할머니가 계셨어요. ‘왜 일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일하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에 한국 남편과 결혼했는데 이후 혼자 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이 대표는 출간 작업에 들어가면서 북송사업의 실체를 파헤친 책 ‘북한행 엑소더스’를 어렵게 구해 읽고 일본 영화 ‘박치기’도 봤다. 이 대표는 “이 책이 북송사업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부터 글을 풀어냈다면 별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아내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여서 좋았다”고 했다.

책의 사진과 글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라고나 할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들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보이고 읽힌다. 물론 저자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안내원이 옆에 있다는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아내들은 한국 북한 일본 정부가 ‘강제송환이다’ ‘귀국이다’ ‘납치다’라고 외쳐대지만 그저 그렇게 됐을 뿐이라는 식으로 담담히 말한다.

“저자는 말해요. 자신은 사회나 국가나 역사를 보면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그가 처한 처지나 상황, 역사나 정치적 역학관계를 생각한다고. 그런 시각이 중요합니다. 국가나 사회부터 보게 되면 사람을 보기 전에 판단이 결정되거든요. 이 책처럼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판단하기 이전에 알아가게 되는 거죠. 독자께서 그렇게 전체를 보시길 바라요.”

책 표지는 건물 한쪽이 드러나고 그 뒤로 바다가 끝도 없이 보이는 사진이다. 저자가 끝까지 이 사진을 고집했다. 원산 앞바다다. 일본인 아내들은 저 바다 너머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저자는 책 표지에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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