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삐뚤삐뚤 휘청휘청 맞춤법까지 틀린 글들이 나는 너무 좋다. 어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순수 동심 회귀적이며 정화적인 아름다움의 경지다. 똑바로 쓰고 틀리지 않고 써야 옳지만, 나는 일부러 어린이들의 오타와 휘청거림을 구태여 바로 잡아주지 않곤 했다. 오히려 사진찍고 벽에 붙이고 눈맞춤을 즐기곤 한다.
왜? 어차피 이 시기는 이때뿐이니까. 결국 아이는 곧 철자도 틀리지 않게 쓰게 될테고, 또박또박 줄맞춰 써나갈 테니까.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그 불안함과 동시에 기성세대의 상상을 초월해버리는 순수함이 가득한 한 때이기에.
아이들의 그림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여서 아직 잘 못 그린다고 하기엔, 그 나이이기에 나오는 그림의 경지가 있다. 딱 그때 아니면 불가능한 타이밍의 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잘그리고 못그리고를 떠나 미소가 퍼지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회복과 충전 같은 기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소중한 순수세계를 세상에 꺼내어 기성세대들의 삶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 기업들이 있었는데, 내가 아트콜라보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꿈담’이 그중 하나였다. 어린이들의 그림을 활용해 제품을 출시하고 제품 수익금을 아이들에게도 분배했던 사회적 기업이다. 아이들의 그림이 제품 안에서 전시되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도, 가정에도 매우 특별한 꿈이며 격려였다.
또 다른 기업은 매해 기업수익의 일정 금액을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던 제이월드 가방 업체였다. 어린이의 그림으로 제품과 콜라보하자는 나의 제안에 금전적기부에서 한차원 더 넘어가 제품에 그림을 담아 꿈과 희망을 주고 또한 기업이 그 판매유통을 맡아 수익을 아이에게 돌아가게 해줄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해 더욱 의미와 기쁨을 더했다.
그런가하면 수년간 꾸준히 아이들과의 콜라보를 아주 의미있게 했던 조아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자폐어린이들과 예술가들을 매치시켜 교육 후원을 했고, 그러한 교육과정에서 나온 어린이들의 그림을 약품의 패키지 디자인에 응용했다. 여느 약상자와는 딱봐도 한눈에 다르게 다가오는 제품으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마케팅을 동시에 시도했던 사례였다. 언젠가 딸이 운동대회서 상품으로 조아제약 비타민을 받아온 걸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말했다. “어머나 조아제약거네? 이거 아주 몸에 좋은거야, 꼬박꼬박 잘 먹어!” 나는 수차례 뉴스를 통해 조아제약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어린이 후원소식을 접했고, 어린이 그림으로 패키지된 독특한 약상자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약의 효능을 넘어 패키지의 그림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약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소비자에게 신뢰와 충성도를 높여주는 콜라보의 힘이다.
기업이 어린이의 그림을 선택할 때는 뭔가 사회적 책임에 동참한다는 기여의 메세지를 담곤한다. ‘래티바이티’라는 패션 브랜드는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그림을 타셔츠와 스카프에 담는 콜라보를 했고, 그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했다. 결국 아이들의 그림을 사용한 제품은 스토리와 의미를 기업이 가져가지만 그 수익은 사회환원하겠다는 의지로 상생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의 제품에는 종종 파스텔 톤이나 원색의 밝고 쾌활함이 대단히 목적성을 가진듯 당당함을 지니지만 그와 더불어 종종 등장하는 건 캐릭터다. 아이들은 캐릭터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엄마의 말보다, 대통령보다 아이들에게 더 힘이 세다. 때문에 캐릭터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일상을 점령한다. 잘 안먹는 음식 포장에, 이빨닦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칫솔에, 아이들의 상처 밴드와 약에…. 캐릭터는 만사형통, 만병통치의 역할을 해낸다. 아이들에게 캐릭터는 친구이며 위로이며 해결사다.
그런데 이 캐릭터 사용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아이들이 열광하는 캐릭터 사용은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없을땐 창의성을 발휘해야한다. 자본이 부족해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아전문 마스크팩회사인 슈슈코스메틱은 아이들이 열광하는 디즈니와 뽀로로 등 국내외 유명 캐릭터를 활용하는 쟁쟁한 기업들 틈바구니를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뚫었다. 일명 ‘슈슈 콜라보 마스크팩’이다. SNS틱톡에서 유명해 대중적인 소통력을 확보한 홍유정양의 그림을 선택해 색다른 뉴스도 만들고 쌍방 윈윈 전략을 펼친 것이다.
아이들의 그림은 수준을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고, 낯설고,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에게나 미소짓게 하고, 누구든 맘을 열게하고, 무한한 호감을 주는 어린이 그림들.
올해 10월 개최되는 국제 어린이 시각예술축제인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의 예술감독을 맡은 내가 어린이의 그림과 글씨, 어린이의 목소리를 탐내는 것은, 도저히 어른들은 흉내낼 수 없는 무한 오픈 파워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라는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어린이의 그림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게해주는 거울임을 새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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