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형근화백 작품서 영감받아 새 앨범 낸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0일 03시 00분


그림 봤을때 엄청난 에너지 느껴
베이스 클라리넷을 주악기 삼아
원초적 리듬 직관적으로 풀어내
코믹 영화도 직접 각본쓰고 연출

8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고 윤형근 화백의 작품 ‘Burnt Umber & Ultramarine, 1991-1993’ 앞에 선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이 그림을 표지로 쓰고 ‘Burnt Umber…’ 등 6곡을 담아 디지털로 먼저 공개한 신작 ‘Yun Hyong-keun’은 12월에 LP로도 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8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고 윤형근 화백의 작품 ‘Burnt Umber & Ultramarine, 1991-1993’ 앞에 선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이 그림을 표지로 쓰고 ‘Burnt Umber…’ 등 6곡을 담아 디지털로 먼저 공개한 신작 ‘Yun Hyong-keun’은 12월에 LP로도 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시작은 터무니없이 낮은 ‘솔’. 악기는 베이스 클라리넷 한 대. 관악기의 굵은 통은 이내 ‘시’와 ‘파’ 같은 배음(倍音)을 함께 토해낸다. 태초에 하나였던 음이 덫에 걸린 구렁이처럼 요동친다. 음계를 내닫고 단속적 리듬을 푼다. 영적이며 방정맞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42)가 2일 낸 새 앨범 ‘Yun Hyong-keun’의 첫 곡 ‘Halo 1’에 관한 이야기다.

8일 만난 김 씨는 “한국 단색화의 거장인 고 윤형근 화백(1928∼2007)의 그림을 보고 제멋대로 불어 젖혀 봤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 색소폰계의 혜성 같은 이단아다. 일찍이 비보잉에 미쳤고 구본승, 젝스키스 등 가수의 백댄서로 무대에 섰다. 태권도와 이종격투기에도 빠져 온몸으로 살던 이 젊은이는 25세에 재즈를 처음 접했고 누워서 색소폰 불다 잠들 정도로 지독하게 독학했다. 35세가 된 2013년 데뷔앨범 ‘천사의 분노’를 냈다. 자유분방한 태도와 패션, 공식을 깨는 연주에 평단 일각에서는 그를 ‘이단아’로 낙인찍었다. 재즈, 록, 힙합, 전자음악을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올해 초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상을 받았다.

그가 베이스 클라리넷을 처음 주악기로 뽑아든 신작 ‘윤형근’ 역시 문제작이다. 진동하며 천변만화하는 저음이 고막을 휘젓고 침공해 온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

“윤 화백 전시를 연 PKM갤러리에서 제안했다. 그 전까지는 윤 화백에 대해 몰랐다.”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

“오윤, 프리다 칼로, 샤갈, 모네의 강렬한 화풍을 좋아했다. 윤 화백은 좀 달랐다. 갤러리에 들어서 첫 작품을 보자마자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느꼈다.”

―음악으로 어떻게 승화했나.

“갤러리와 여러 차례 미팅을 했는데 솔직히 윤 화백의 생애 등에 관해 설명을 듣는 것 자체가 내겐 스트레스였다. 전시 첫날 본 느낌만 갖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 휴관일에 갤러리에 와 그림을 마주 보며 2∼3시간씩 즉흥연주를 했다.”

―이번엔 베이스 클라리넷이다.

“사실 난 그 악기의 운지(運指)법도 제대로 모른다. 거의 감으로 했다. 운지와 기교는 거의 배제하고 원초적 리듬과 호흡에 집중했다. 오버톤(overtone)과 멀티포닉(multiphonic), 즉 한 음을 불어 동시에 여러 음을 내는 기법을 종종 썼다. 마우스피스를 무는 세기, 혀를 대는 방법을 다양하게 했다. 풀피리 불듯.”

―윤 화백의 단색화와 음악적 미니멀리즘은 서로 통하는 듯도 보인다.

“나랑은 많이 다른 분인 것 같다. 난 멋있어 보이는 걸 못 한다. 내 딴엔 그냥 재밌으려고 하는 건데 그걸 너무 예술적으로 보는 것도 불편하다. 해학과 위트, B급 정서가 좋다.”

―영화도 제작 중이라고 들었다.

“내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첫 영화, 코믹 스릴러 ‘다리 밑에 까뽀에라’다. 사람을 죽이고 그 껍데기를 계속 바꿔 입으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온다. 거의 완성 단계다. 차기작 ‘코리안 강시’도 다음 달 크랭크인한다. 미국에서 중국 잡으려 보낸 강시가 한국으로 잘못 배달된다. 중국에서 영환도사가 급파된다. 장편영화 ‘살사’로 이야기를 이어갈 거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임하다 나도 영화감독 해볼 만하겠다 싶어 시작했다.”

―독집 정규앨범만 벌써 11집이다. 참여한 앨범까지 하면 7년간 수십 장. 추진력이 끝내준다.

“앨범 제작이 어렵다고들 하는 게 난 좀 이해가 안 간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만들 수 있는 게 음악인데…. 장당 300(만 원) 안쪽으로 만들 수 있다. 1년에 300은 벌 수 있지 않나. 통장 잔액이 없을 뿐.”

―앨범 ‘Yun Hyong-keun’을 어떻게 들어주길 바라나.

“프리(자유즉흥) 음악인데 되게 멜로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서정적이다. 그림을 보면서 들어도, 배경음악으로 틀어놔도 그만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색소포니스트 김오키#yun hyong-keun#고 윤형근화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