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일 때 ‘진짜 예술’이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6일 03시 00분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 아시아 최초 국내서 온라인 진행
19개국 예술인 등 1000여명 참여

“시각장애인 학생들, 저는 이들을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부릅니다. 이들과 24년째 예술 활동을 함께하며 서로 다른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화가 엄정순 씨는 14일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에서 ‘어쩌다 리더가 된 예술가’를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말했다.

세계 문화예술 교육가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201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후 호주, 영국, 미국에서 격년으로 열렸다.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14∼17일 열리게 됐는데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다. ‘예술은 어떻게 세상의 눈을 바꾸어 가는가’를 주제로 19개국 64명의 발제자가 참여한 가운데 국내외 문화예술인과 교육가 350여명을 비롯해 모두 1000여명이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 행사는 ITAC 국제운영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이규석)이 주관한다.

엄 씨는 1996년부터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사물을 손으로 만져보고 그 느낌을 표현한다. 코끼리를 만져본 후 이를 조형물로 표현하는 ‘코끼리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엄 씨는 “점 네 개를 찍어 포크를 표현하는 등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만들어내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며 “예술의 사회 참여는 서로가 함께 예술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미대로 진학한 경우도 있다. 시각장애가 있어도 미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낸 것이다.

필리핀 산아구스틴대의 로살리에 제루도 교수는 빈곤, 재난에 시달리는 이들의 상처를 예술로 치료하고 있다. 제루도 교수는 “함께 문을 만들어 바닷가, 계곡 등에 설치하는 작업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문을 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수감된 난민 여성들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젝트도 실시했다. 그는 “여성들이 인형을 직접 만들면서 자아를 회복하고 정신적으로 자유를 느끼며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산아구스틴대의 로살리에 제루도 교수가 재난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원 모양 도구를 함께 잡고 둥글게 모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화가 엄정순 씨가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에서 기조발제 하는 모습.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필리핀 산아구스틴대의 로살리에 제루도 교수가 재난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원 모양 도구를 함께 잡고 둥글게 모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화가 엄정순 씨가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에서 기조발제 하는 모습.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멕시코계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라파엘 로사노에메르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빛으로 다리를 만든 ‘경계 조율(border Tuner)’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 멕시코 양쪽에서 쏘아올린 빛은 사람의 말에 반응하도록 설계해 빛이 맞닿으면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다”며 “두 나라 사이의 장벽도 생각과 교류는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2주간 수만 명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서 마이크를 통해 대화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자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기반본부장은 “아시아에서 예술교육 활동을 공유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 싶다”며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예술가의 상상력과 시도, 예술에 대한 욕구를 펼치고 공유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예술#시각장애인#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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