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날씨에 걷기 좋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이 가을을 만끽할 방법은 없을까.
서울관광재단은 서울 도심에서 한적한 여행지를 찾는 이들을 위한 마포구 도보 관광코스 5선을 추천했다. 해당 코스들은 마포구를 가로지르는 ‘경의선숲길’을 중심으로 뻗어나는 ‘아현동 고갯길’, ‘마포나루길’, ‘성미산 동네길’ 그리고 ‘하늘 노을길’ 등이다.
이들 코스는 전철역 중심으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지역을 묶었다. 대표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마포구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으니 골목 산책만으로도 여행의 느낌을 낼 수 있다.
◇ 도심 속 힐링 산책 ‘경의선숲길’
경의선 폐철로 구간을 공원화한 경의선숲길은 용산구 용산문화센터에서 마포구 가좌역에 이르는 총 6.3km의 도심 산책길이다.
이 산책로가 효창공원역, 공덕역, 서강대역, 홍대입구역, 가좌역 등의 5개 전철역을 지난다. 마포구 중심을 종단하며 관광 명소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알짜배기 코스다.
경의선숲길은 전철역을 기준으로 네 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마다 특색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공덕역의 염리동·대흥동 구간은 왕벚나무, 산벚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와 운동 기구, 벤치, 분수대 등을 갖춘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산책로 바로 옆길에는 근대한옥을 카페와 식당으로 개조한 가게가 많다. 테이크아웃 커피 마시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대흥역 쪽 염리동은 조선 시대 때 전국의 소금배가 드나들었던 마포나루터와 가까워 소금장수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다. 재개발 예정지인 이곳에 벽화로 단장한 ‘소금길’이 조성돼 있다. 벽화를 찾아 언덕배기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곧 사라질 동네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기가 아쉽다. 근처 평양냉면 전문점 을밀대에 들르는 것도 추천한다.
서강대역 구간에는 철길 건널목 차단기를 보존해두고, 철길에서 놀던 아이들을 청동 조형물로 재현해 놓아 소소한 볼거리가 있다. 산책로를 살짝 벗어나 신수동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식빵 맛집 빅베어브레드 가 있다. 와우교 근처 오래된 식빵 전문점 김진환제과점과 빵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다.
특히 경의선숲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 홍대입구역과 와우교 사이 약 250m 구간이다. 열차 객차 모양 건물들을 짓고, 이곳에서 책을 전시·판매한다.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북 콘서트와 같은 다양한 책 관련 이벤트도 진행한다.
경의선숲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홍대입구역과 가좌역 사이 연남동 구간이다. 상가 밀집 구역인 데다 공항철도역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한다. 잔디밭과 실개천이 흐르는 이 구역을 ‘연트럴파크’라 부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연남동의 핫플레이스인 동진시장 골목에 닿는다. 청년들이 주말에 동진시장에서 플리마켓을 여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시장 안이 고요하다.
가좌역이 가까운 연남동 끄트머리에는 복합문화 공간 다이브인, 향수 공방 가르니르, 디저트 카페 땡스오트 연남, 서점 포르트 등의 유니크 한 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늘어선 산책로를 지나면 곧 가좌역에 도착한다.
◇ 계단 넘어 쉼을 찾아가는 ‘아현동 고갯길’
아현동은 조선 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동네이자 대표적인 서민 거주지다. 아현역 일대 뉴타운 개발을 통해 신축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 중이다. 아현역과 애호개역 사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재개발 전후의 동네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아현역 근처 손기정로와 환일길 일대 골목에는 재개발 전의 과도기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근대한옥이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거나, 마을버스가 다니는 비좁은 고갯길 너머에 고속도로 같은 대로가 뻗어 있다.
아현동의 이런 서민적인 풍경이 제2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에서 빛을 발했다. 영화 초반부 최우식(기우 역)이 동네 슈퍼에서 박서준(민혁 역)을 만난 장면과 중반부 박소담(기정 역)이 복숭아를 사 들고 박 사장 집으로 향하던 장면을 아현동 고갯길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 ‘우리슈퍼’는 실제로는 ‘돼지쌀슈퍼’이며 박소담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은 슈퍼 바로 옆 골목이다. 기생충이 오스카상 수상해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을 성지처럼 방문한다.
아현동에는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지은 현장이 있는가 하면, ‘뉴트로’ 콘셉트로 공간 재생을 선택한 곳도 있다. 1958년에 지어진 목욕탕 행화탕은 재개발로 철거가 확정된 이후 몇 년 동안 방치되다가, 2016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사 축제행성이 ‘예술로 목욕합니다’ 슬로건을 걸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행화탕 안에 목욕탕 콘셉트 카페인 행화커피를 열어 목욕탕 관련 음료와 굿즈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애오개123은 구두공장 건물을 가구회사 비플러스엠이 쇼룸과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햇빛 맛집’으로 소문났다.
종착점인 애오개역이 가까워지면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이때 들르기 좋은 식당으로 황금콩밭과 아현동간장게장을 추천한다. 황금콩밭은 출판사 대표가 차린 성니콜라스성당 인근에 있는 두부 전문점이다. 아현동간장게장은 게장 정식을 1만8000원에 맛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소문났다. 아현시장 근처에 있다.
◇ 먹거리로 가득한 ‘마포나루길’
마포나루길은 조선 시대 한강을 주름잡던 마포나루와 이 일대에 살았던 당시 인물들의 자취를 더듬어 걷는 길이다.
첫 목적지인 아소당터(아소정터)는 흥선대원군의 별장터다. 흥선대원군은 말년을 보낼 별장과 자신의 묘소를 길지에 조성했다. 지금 그 자리는 동도중학교와 서울디자인고등학교의 정문 옆 작은 공터로 남았다. 아소당터 표지석이 없다면 모르고 지나칠 법하다.
용강동 큰우물로2길 고갯길에 자리한 정구중가옥은 192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추정된다. 용강동의 부농 이 모씨가 외동딸을 위해 장안 4대 목수로 소문난 안영달에게 부탁해 지은 집이다.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 동안 넣어 두었다가 1년 동안 건조한 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고갯길을 넘어 마포 사거리에 닿으면 토정 이지함(1517~1578) 동상을 만난다. 조선 중기 학자 토정은 ‘토정비결’의 저자이며, 조선 3대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 흙담 움막집에서 살아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고 한다.
토정은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으로서 상공업을 권장하는 실학의 선구자로 살았다.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과 소금을 나눠 주고, 바다와 땅을 이용해 먹고 살 방도를 알려주는 등 구휼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마포와 소금은 깊은 연관이 있다. 옛날 삼개포구로 불렸던 마포나루는 조선 후기에 들어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과 젓갈이 주로 마포 주변에서 거래됐다.
마포나루터의 번성했던 상권이 마포갈비 골목을 비롯한 음식문화거리로 이어졌다. 옛날 뱃사람과 상인들이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던 것이 마포갈비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족발 골목, 전 골목으로 유명한 공덕시장은 전성기 시절 600여 개의 점포가 있었다고 한다. 20~30년 전부터는 서비스 고기였던 갈매기살을 파는 고깃집이 많아져 마포갈매기 골목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기 천국’이라 불리는 마포 먹자골목에서 연탄불에 구워 먹는 양념 돼지갈비를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최대포집과 국물에 밥을 토렴해주는 사골 곰탕집 마포옥, 바싹 불고기의 원조 역전회관은 먹자골목의 필수 방문 코스다.
◇ 나지막한 동네산책길 ‘성미산 동네길’
성산동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서교동, 연남동, 상암동, 망원동과 접해 있어도 거리가 한산하다. 대부분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곳을 산책 코스로 소개하는 이유는 숨은 명소가 꽤 있기 때문이다.
성산동에는 산이 성처럼 둘렀다는 뜻을 지닌 성미산이 있다. 성미산에서 성산동의 지명이 유래됐다. 성미산은 해발 66m에 불과한 산이지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힐링 명소다.
성미산 바로 아래 마포중앙도서관이 있으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울의 3대 빵집으로 불리는 리치몬드 제과점 등이 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위안부 역사와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세계 분쟁과 여성 폭력에 관한 정보를 전시하는 곳이다. 성북동 나폴레옹과자점에서 일하던 명장이 1979년 독립해 차린 리치몬드 제과점은 서울 빵지 순례 필수 코스로 소문났다. 대로변에 있어 지나가는 길에 들르기 좋다.
성산동에서 서교동으로 넘어가면 최규하 전 대통령이 2006년 서거할 때까지 약 30여 년 동안 거주했던 단독주택이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유품을 보존하고 거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두어 생활사박물관의 역할을 한다.
성산동에서 망원역으로 가면 주택가 골목에는 김소영·오상진 아나운서 부부가 운영하는 북카페 당인리책발전소가 자리했다. 1층은 서점, 2층은 카페 공간이다. 오 아나운서의 책 추천 코너에는 책 표지마다 손글씨로 쓴 감상평이 적혀있다. 이곳에서 길을 건너 망원역 2번 출구로 가면 망원시장과 망리단길로 이어진다.
망리단길의 식당, 카페, 생활용품점, 책방, 악세서리 숍, 빈티지 편집숍, 문구용품점 등의 상점들이 대체로 협소하고 소박하다. 망원동의 서민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점이 외지인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망리단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망원한강공원 내 서울함공원이 나온다.
합정동 양화진의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양화진 뱃길 탐방’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포구에서 9월 9일과 10일 두 차례 진행하며 절두산 순교성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등을 답사하고 유람선에서 잠두봉과 한강의 풍경을 감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정원을 15인으로 제한해 진행한다.
◇ 하늘과 석양이 아름다운 ‘하늘 노을길’
가끔 도심을 벗어나고 싶다면 한강 변에 자리한 월드컵공원을 추천한다. 오후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에 도전해 보자.
다만, 이 코스는 계단을 제외한 총거리가 8km가 넘고, 대부분 그늘이 없는 시멘트길이어서 다리 피로도가 높은 편이다. 하늘공원(98m)과 노을공원(96m)도 고지대에 있어 편한 신발과 복장을 갖춰야 한다. 노을 맛집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서 야경을 보려면 늦은 오후에 걷기 시작하면 된다. 9월 기준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
아이와 함께 걷거나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하늘공원 아래 메타세쿼이아 숲길(희망의 숲길)과 난지천공원만 걸어도 충분하다. 이 구간은 녹음이 우거진 구간이므로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에 걷기 좋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 오를 때는 맹꽁이전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하늘공원 계단 아래에 있는 흙길 산책로이며 강변북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680m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숲길이지만 제법 운치 있어 ‘사진 촬영 명소’로 소문났다. 아직은 호젓한 편이어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하늘공원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하늘공원 서쪽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통해 하늘공원으로 갈 수 있다. 하늘공원은 예전의 쓰레기 산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억새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해 질 녘 전망데크에 서서 화려한 서울 도심을 굽어보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늘공원 서쪽 순환도로(하늘길)로 내려오면 맞은편에 노을공원 입구가 보인다. 노을공원도 하늘공원 높이만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노을공원은 골프장 부지에 조성되어 있어 잔디밭이 매우 넓다.
하늘공원보다 볼거리는 없지만, 캠핑장, 어린이 놀이터, 골프장, 카페 등의 즐길거리를 갖추고 있다. 매점 2층의 노을전망대에 오르면 방화대교, 가양대교, 행주산성 일대의 강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중 한 곳에서 노을을 본다면 하늘공원을 추천한다.
노을공원 입구로 다시 내려와 난지천공원 산책로를 이어 걷는다. 울창한 가로수 잎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월드컵경기장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월드컵경기장 맞은편 마포농수산물시장에 들러 푸트코트나 횟집에서 요기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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