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 신작 ‘연년세세’
본명도 모르고 고모집 식모살이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함 그려
“어떤게 잘 사는 삶이었을까”
ⓒ정민영
소설가 황정은(44·사진)의 신작 장편 ‘연년세세’(창비)는 ‘1946년생 순자 씨’ 이순일과 그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어릴 적 고모네서 식모살이하며 ‘순자’로 불렸던 이순일과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 생계를 떠맡은 그의 맏딸 한영진 등 이 가족의 모습에는 한국 사회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압축돼 있다. 작가는 건조하고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특유의 문체로 이들의 일상을 복원해 낸다.
최근 e메일 인터뷰에서 작가는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의 어른을 자주 만났는데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이 궁금했다”며 “그 이름을 지은 어른은 아이가 순하게 살기를 바랐겠다 싶었고, 한 시대에 사람이 ‘순하게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를 계속 생각하다 소설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자연히 소설의 중심축에는 ‘시대의 바람’대로 희생하며 살아야 했던 순자가 있다. 식모살이에 지쳐 도망친 병원에서 간호조무 일을 배워 보지만 곧 고모부 손에 잡혀 되돌아온다. 고생 끝에 결혼하고 호적을 떼보고서야 본명을 알게 된다. 작가는 “내게도 순자로 살아본 부분이 있고 누구나 그럴 거라 생각한다”며 “순자를 알려면 일단 그를 만나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순자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끔찍한 일 겪지 않고 행복하기를, 무엇보다 ‘잘 살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잘 살기란 대체 무엇일까. 작가는 “지금까지 잘 사는 법은 대개 ‘남들 하는 대로’이거나 ‘남들보다 더’인 경우가 많았다. 그게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각자의 잘 살기를 도모하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꿈, 이름, 삶을 빼앗긴 무명의 ‘순자들’을 조명하면서도 과거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인물은 한영진이었다. 맞벌이하며 악착같이 가족을 꾸리는 그에게는 이해, 여유, 관조가 없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 세월이 되고, 역사가 되고, 사회가 됨을 기억하게 한다. 제목 ‘연년세세’ 역시 ‘대대손손’이란 말을 반복해 생각하다 떠올렸다. 그는 “대대손손은 수직적 힘을 가진 말인 데 비해 연년세세는 수평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갈 수 있는 말”이라며 “연년세세의 미래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이어갈지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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