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1912~1996) 시 특유의 음식 소재에 북방 정서가 잘 버무려진 ‘국수’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백석의 연인 ‘자야’는 당시 1000억 원대의 서울 성북동 대원각(현 길상사)을 시주한 뒤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장옥관 시인은 ‘메밀냉면’에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맑은 메밀 맛’을 노래하고 있다.
두 시(詩)에 나타난 슴슴하다에서 ‘조금 싱거우면서도 뒷맛이 담백하고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는지. 한데 우리 사전은 슴슴하다를 ‘심심하다의 잘못’이라고 고집한다. 사실 슴슴하다는 싱겁다거나 심심하다와는 또 다른 감칠맛과 은근한 맛이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린다. 이쯤이면 슴슴하다를 복수표준어로 삼는 걸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에서는 슴슴하다는 물론이고 ‘아무 맛도 없이 슴슴하다’는 뜻의 ‘무슴슴하다’도 문화어로 삼고 있다.
슴슴하다보다 더 찬밥 신세인 낱말도 있긴 하다. ‘닝닝하다’다. 음식 따위가 제맛이 나지 않고 몹시 싱겁거나, 양념 등으로 니글거릴 때면 ‘닝닝하다’고 한다. 언중은 밍밍하다, 맹맹하다와 함께 입에 올리지만 닝닝하다는 ‘밍밍하다’와 ‘느끼하다’의 경남지역 사투리 신세다.
그러고 보니 사투리에 머물러 있거나 사전에 오르지 못한 맛 관련 낱말들이 많다. 짭조름한 보리굴비를 한번 떠올려보자. ‘짭쪼롬하다’, ‘짭쪼름하다’, ‘짭조롬하다’는 나름의 말맛을 지녔지만 ‘짭조름하다’에 밀려 사전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단맛이 나면서 조금 신맛이 있다’는 뜻으로는 ‘달새콤하다’ ‘달콤새콤하다’도 아닌, ‘달콤새큼하다’가 표준어다. ‘들큰하다’는 ‘들큼하다’에 밀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규범 사전이어서 실생활 어휘들을 때맞춰 폭넓게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해법은? 온라인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을 활용하는 것이다.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할 수 있고 뜻풀이를 수정할 수도 있다.
구수하고 맑은 면에 끌려 즐겨 먹는 메밀국수와 모밀국수의 바른 표기는 뭘까? 메밀 낟알이 모가 나 있어 모밀이라고도 하지만 표준어는 메밀이다. 헷갈린다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려보시길. 요즘은 작은 대나무 발이나 나무판 등에 올려놓은 메밀 사리를 장국에 찍어 먹는 ‘판메밀’이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긴긴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 슴슴한 맛에 한번 빠져볼까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