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77)은 국내에 번역된 시집이 아직 없다. 글릭의 작품에 주목한 류시화 시인이 시선집 ‘마음 챙김의 시’(수오서재), ‘시로 납치하다’(더숲)에 대표작인 ‘눈풀꽃’ ‘애도’를 각각 담았다. 글릭의 시 세계를 류 시인이 소개한다.》
글릭은 시적 기교와 감수성이 뛰어나며, 삶의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표현해 온 시인이다. ‘눈풀꽃’을 페이스북에 처음 소개할 때 “인생이라는 계절성 장애를 겪으며 잠시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싶다”고 썼다.
‘…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눈풀꽃’ 중)
눈풀꽃은 이른 봄, 땅속 구근에서 피는 작은 수선화처럼 생긴 흰 꽃이다. 설강화(雪降花·snowdrop)라고도 한다. 눈 내린 땅에서도 묵묵하게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헝가리 유대인의 후손인 글릭은 10대에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7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고 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했다. 두 번의 결혼 생활도 얼마 가지 못했다. 시인에게 시는 ‘삶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노력’ 중 하나였다. 50대 초반,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고 나서 ‘애도’를 썼다.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중략) 살아 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하며/길에 서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는다./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이것이, 바로 이것이/‘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바로 그것이므로.’(‘애도’ 중)
애도는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이다. 그런데 만약 살아 있는 당신이 애도를 받는다면? 살아 있어도 진정 산 것이 아니라면? 죽은 다음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운 좋은 순간을 놓치고 있다면 실로 애도 받을 일이다.
시의 목적은 ‘세상이 살아볼 만하다는 것’ ‘이 삶이 충분히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데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상처받기 쉬운 육체와 정신을 소유하고 고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시간을 살았지만, 글릭은 그 목적에 충실한 시들을 써 왔다. 내가 좋아하는 글릭의 시가 이 기회에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후 기자의 전화에 글릭은 “이제 나는 어떤 친구도 갖지 못하겠구나. 내 친구들 대부분은 작가이니까”라고 처음 생각했다고 한다. 그 직전에 한 말은 “일단 아침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도 한때는/나 같았는가, 오래전/인간이 되기 전에는?/한때는 자신을 활짝 열었는가?/그런 후 다시는/열지 않게 되었는가?/사실 나는 지금/당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어서/말하는 것이니,/바닥에 꽃잎마다 붉게/흩어지고 있으니.’(‘개양귀비’ 중)
개양귀비는 꽃이 피기 전에는 꽃망울이 밑을 향해 있다가 필 때는 홀연히 위를 향한다. 꽃잎을 다 꺼내면 해를 향해 자신을 한껏 연다. 꽃잎마다 질 줄 알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활짝 열어 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꽃의 본성은 피어나는 것이고, 자신을 여는 것이다. 글릭은 개양귀비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삶에서 위대한 것은 생각과 머리가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가슴의 느낌, 직관, 혹은 본능이라고. 마음을 굳게 닫아걸지만 않는다면, 가슴은 외부의 태양과 내면의 불꽃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 나간다. 때로는 자기모순적이 된다 해도 놀랄 필요가 없다. 가슴이 이곳까지 당신을 데려왔고, 앞으로도 인도할 것이니. 당신은 개양귀비꽃의 형제자매라고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이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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