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는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열정적인 노래와 몸짓, ‘사이다 발언’으로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넸다. 그가 15년 만의 안방 나들이에서 열창하는 그 순간, ‘웬수’라는 신곡에 꽂혔다. ‘딱 한 글자 정, 정이 웬수’란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꼰대’ 우정후(정보석 분)는 집 나간 아들의 소식을 묻곤 “자식이 웬수다!”라며 아내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굽실대기만 하는 아내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편을 ‘웬수’로 저장한 뒤 유쾌하게 반격한다.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의 한 장면이다.
이쯤이면 눈치챘을 줄 안다. 그렇다. ‘웬수’의 쓰임새에 걸맞은 뜻풀이를 더해 주어야 한다.
웬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흔적도 없다. 그나마 우리말샘에 ‘원수의 사투리’로 올라 있다. 강원 경기 경상 전남 충북 등 대부분 지역에서 쓰는 말이다. 여성들이 주로 남편이나 자식들이 속을 썩일 때면, ‘그놈의 정(情)’을 담아 쓰는 표현이 웬수다. 거기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다.
반면 ‘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일컫는다. 철천지원수, 불구대천(不俱戴天)에서 보듯 ‘원수’에는 원한과 적개심이 가득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에도 남에게 악한 일을 하면 그 죄를 반드시 받는다는 무서운 뜻이 들어 있다. 원수와 웬수의 쓰임새가 이처럼 다른데도 우리 사전은 웬수를 원수의 사투리로만 묶어 둔다.
한때 인기를 모았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기억하시는지. 황혼의 배낭여행에 등장하는 할배는 누가 뭐래도 ‘할아버지를 정겹게 부르는’ 말이다. 엄숙한 노인의 이미지를 할배로 밝고 정감 있게 그려냈다. 강원, 경남 지역에서 쓰는 ‘할아버지’의 사투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재’도 그렇다. ‘아저씨의 낮춤말’로 묶어두지 말고 ‘아저씨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요즘 아재는 ‘멋진 아저씨’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처럼 말맛을 인정받아 뜻풀이를 더한 낱말이 있다. ‘마을’의 사투리였던 ‘마실’이다. 마실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뜻을 인정받아 표준어가 됐다.
누군가 사전의 미래는 ‘읽는 사전’에 있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표준어이냐, 아니냐를 확인하는 ‘보는 사전’이 아니라 읽으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뜻풀이에 충실한 사전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언중의 말 씀씀이를 충실히 담아내야 한다.
‘웬수’, ‘할배’, ‘아재’에 천편일률적인 ‘…의 사투리’가 아닌, 말맛을 살린 뜻풀이를담을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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