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나온 ‘인간의 내밀한 역사’(시어도어 젤딘 지음·김태우 옮김·어크로스)는 다른 출판사에서 1999년 초판, 2005년 개정판을 내고 절판된 책을 다시 낸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젤딘의 ‘인생의 발견’(2016년)과 ‘대화에 대하여’(2019년)를 냈던 어크로스가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대신 내줄 수 없겠느냐”는 저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책은 출판사 글항아리도 복간을 망설였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지난달 펴낸 저서 ‘읽는 직업’에서 ‘무명의 인간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미학적이기 그지없는 문장들을 얽어 나간’ 이 책을 복간하고 싶었지만 주저했다고 털어놓는다. 판매 면에서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가 컸다.
절판의 기준은 1년에 1000부나 하루 1부 또는 한 달에 10부 미만 판매 등 출판사마다 다르다. 권당 하루 10∼20원의 보관료도 부담이다. 한번 독자가 외면한 책을 다시 내는 것은 모험이다. 그럼에도 복간된 책은 어떤 행운을 타고난 것일까.
이은혜 편집장은 “상업적으로 확실한 것”이라고 못 박는다. 독자가 다시 찾으리라 장담할 만한 뒷배가 필요하다. 올해 문학동네가 복간한 김은성 작가의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는 김영하 소설가가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유명인의 공개적 찬사는 복간의 든든한 담보가 된다.
비슷한 것으로 ‘셀럽의 사적 추천’이 있다. 이진희 은행나무 총괄이사는 “정유정 작가가 ‘좋은 책인데 절판됐더라’고 한 책을 다시 펴냈다”고 했다. 2007년 국내 한 출판사가 냈지만 빛을 못 본 영국 작가 W E 보먼의 소설 ‘럼두들 등반기’(2014년)다. ‘7년의 밤’ ‘종의 기원’의 정 작가가 추천사를 쓴 이 책은 1만 부 넘게 팔렸다. 책 띠지에 ‘정유정 강력 추천’이라고 적힌 것은 물론이다.
상업성을 뒤로 돌릴 때도 있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저자의 생각, 사유, 철학의 흐름에서 빠지면 안 되는 책은 손해를 무릅쓰고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도 그런 경우다. 다만 전작 ‘인생의 발견’이 약 3만 부 나간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중고 책 시장의 독자 반응도 따져 봐야 한다.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2005년·마음산책)은 소설가 김연수가 ‘스밀라는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한 책이다. 그러나 1996년 한 출판사에서 나온 뒤 절판됐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이 책을 낸다고 헌책방 사이트에 알렸더니 ‘감사하다’ ‘이번엔 분권하지 말아 달라’ 같은 댓글이 수백 건 올랐다. 이들만 사줘도 200부는 팔리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10만 부 넘게 나갔다.
책도 시운(時運)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랑받아 마땅한 책이 시대를 못 만나 묻혔다는 것이다. 저자의 요청으로 글항아리가 2018년 초 복간한 ‘법으로 읽는 유럽사’(한동일 지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8000부나 팔렸다. 그 전해 저자의 다른 책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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