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갈치라면 끓여먹던 셰프가 만든 ‘인생메뉴’ 무파스타…무슨 맛?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0일 11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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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사가 언제부터인지 ‘셰프’로 불리고 있다. 프랑스어를 쓰니 더 멋지게 보여서일까. 조리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주목을 받는 직업이 됐다. 조리사도 구분해 볼 수 있다.

레스토랑이나 본인의 브랜드를 높여 규모의 확대를 도모하는 사업형 조리사, 활동 업적을 지향하는 명예형 조리사, 가르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후학 양성 조리사, 마지막으로 주방을 떠나지 않는 실무형 조리사가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늘 같은 자리에서 편안한 유대감을 주는 실무형 조리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김이안 셰프.
김이안 셰프.
개인적으로 10여 년을 ‘따라다닌’ 실무형 셰프가 있다. 서울 서초구 ‘다이닝바 이안스’의 김이안 셰프다. 그의 레스토랑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서 제주 서귀포 산방산 근처, 다시 서울 양재천, 최근에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요리 출발점은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홀로 밥을 먹을 때 시도했던 상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에 라면에 갈치를 넣어 끓여보기도 했고, 나중에 성인이 돼 일식 요리를 배우며 해산물을 배웠다. 경남 통영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물컹한 물메기탕부터 여러 갯것에 익숙했지만 생물(生物)을 다루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아 이국적 창작요리에 눈을 돌렸다. 그 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긴 수학기를 보냈고 10년 전 본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열었다.

김 셰프의 요리인생에 변화의 계기도 있었다. 남들이 요리 유학이나 해외연수를 떠날 때 그는 3년간 제주살이를 택했다. 산방산이 바라다 보이는 아담한 집에서 뿌리채소와 와일드루꼴라 등 허브를 키우고 제주 해산물로 요리했다. 뿔새우가 파스타에 들어가고 그날 잡힌 생선들로 스튜를 만들었다. 제주 시절의 식재료를 말할 때면 그의 목소리에 흥이 더해진다. 서울 노량진시장과 가락시장이 전부였던 그에게 제주도는 새 스승과 마찬가지였고, 요리도 깊어졌다.

그에게는 인생 메뉴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무파스타! 아주 흔한 식재료 조합이다. 스파게티 면발에 무가 들어갔다면, 어떤 이는 그걸 돈 주고 사먹는 음식이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제주 토양에서 농사지은 무의 촉촉한 적정 상태를 터득한 듯하다. 흔한 식재료라고 해도 성찰과 아이디어, 테크닉으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셰프의 마법’ 아닐까?

돼지갈비튀김은 처음에는 주방 식구들이 먹으려고 만들었는데 이제는 단골들의 익숙한 메뉴가 됐다. 졸인 돼지등갈비를 바삭하게 튀겨낸다.

적지 않은 시간 김 셰프의 식당을 따라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 모두 20석 안팎의 소규모 양식당이다. 셰프가 주방에서 나왔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다. 고객도 안심이다. 셰프의 안테나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식사할 수 있기에 말이다.

갈치라면을 끓였던 소년은 제주살이 당시 먹던 무꽃나물을 기억하며 오늘도 손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묵묵히 이안스를 지키고 있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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